회원 인터뷰2 (천정환 집행위원)

활동소식

인터뷰일시 : 2023년 8월 18일(금) 오전 10:00 ~ 11:00

장소 : 줌 온라인

인터뷰이 : 천정환 (지식공유연대 집행위원,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진행 : 고찬미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지간행실 선임전문위원)

박서현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지식공유연대 활동

진행자 안녕하세요 천정환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지공연)의 초대 공동의장으로서 활동하셨고 현재는 지공연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십니다. 먼저 초대 공동의장으로서 지공연 활동을 이끌어와 주신 점에 대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지공연은 소속 학회인 <대중서사학회>ㆍ<상허학회>ㆍ<한국여성문학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의 오픈액세스(Open Access, OA) 출판 전환에 성공하는 등 여러 일을 해왔습니다. 지공연의 그간 활동 중 선생님께 특히 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천정환 연구자들이 지공연에 함께 모이고 뭉친 것 자체가 가장 기억에 남고 또 가장 의미 있는 성과라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이 학과나 분야, 또는 출신 학교의 격벽 때문에 서로 교류가 힘들고 ‘각자도생’ 문화가 너무 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뭉쳤다는 것이야말로 지공연의 가장 멋진 성과이자 존재의의가 아닐까요. 그리고 OA 운동만이 아니라 학계에 해피캠퍼스 문제를 제기했던 것, 김건희 논문 표절을 위시한 연구부정 문제를 제기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 성과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연구자들이 뭉쳤다는 점과 관련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공연이 기획·출판한 단행본 지식을 공유하라: 한국 오픈 액세스 운동(빨간소금, 2022)에 게재된 집담회 ‘지식공유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참여하신 서강대 전인교육원의 박숙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지공연 초대회장 중 서울대 지리교육과의 박배균 선생님이 커먼즈(commons) 관련 활동을, 한성대 크리에이티브 인문학부의 정경희 선생님이 OA 관련 활동을 대표하셨다면 선생님께서는 제도권 안팎에서의 비판적 지식 활동을 대표하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지공연에는 국어국문학계 학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국문학자이시기도 하고요, 지공연에 국어국문학계 학회들이 많이 참여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천정환 오늘날 국어국문학이라는 분야가 인문학 분야 중 가장 큰 분야가 되었습니다. 객관적 통계가 있는데요, 인문학 분야 중 다른 큰 분야인 영어영문학에 비해서도 대학원 졸업자 기준으로 거의 2배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산술적으로 생각해도 다른 분야에 비해 지공연에 많이 참여하게 되는 것일 수 있겠는데요, 국어국문학 분야 중에서도 특히 현대문학 분야 연구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문학 연구가 가지는 현실 연관성이나 실천성이라는 문제와 깊이 연관돼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문학 분야 연구자들은 공연만이 아니라 다른 학술운동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문학협동조합 활동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한국 현대문학 분야 연구자들이 다른 학술운동에도 많이 참여한다는 말씀과 연관이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비정규직 교수ㆍ연구자의 증가와 대학원생의 그림자 노동 등의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연구자가 어렵고 또 문제적인 현실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전통적 학회 이외에도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생겨난 <수유너머> 등을 포함한 대학 밖의 소규모 학술단체들은 이러한 현실을 문제시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 이러한 소규모 학술단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인문학협동조합> 설립을 주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문학협동조합을 설립하신 이유가 무엇이고 인문학협동조합에서는 어떤 활동을 진행했으며 이러한 활동을 진행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천정환 사실 인문학협동조합 이전에도 지금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연집)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에서 <퍼슨웹>이라는 소규모 학술·문화 공동체를 했었습니다. <수유너머>가 만들어진 그 시절부터 그와 같은 소규모 자생적 학술단체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체마다 성격은 다른데요. <수유너머> 외에도 <다중지성의 정원>, <철학아카데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2000년대 학술단체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저 스스로 연구자로서 서는 문제와 연구자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문제 둘 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6년에 운 좋게 교수로 임용된 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사회의 속살과 그 변화 과정을 보게 됐고, 그리고 인문사회과학의 위상이 달라지는 과정을 나름 관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서 2010년 「신자유주의 대학체제의 평가제도와 글쓰기」(『역사비평』 제92집)라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학술 재생산 체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또 제가 근무하는 대학이 신자유주의적 제도의 도입과 실행에 앞장서는 학교였기 때문에 예민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학부와 대학원 모두 국립대학을 다녔는데 아시다시피 국립대학은 상대적으로 대학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받아들이거나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수용하는 데 상대적으로 둔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임용된 대학에선 글로벌한 수준에서 급속하게 신자유주의 대학체제가 도입되고 실행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일종의 책무의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런 글도 쓰고, 또 그리고 그러한 실천의 일환이 인문학협동조합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협동조합 붐이 한국에 있기도 했는데요.

신자유주의 대학체제가 안착하며 대학인들을 옥죄는 와중에서도 HK 사업, BK 사업 등에 의해서든, 그간 누적된 학술장의 역량 덕분이든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은 나름의 높은 생산성으로 연구자들을 많이 길러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길러낸 연구자들을 대학과 선배 연구자들이 전혀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대학 안과 대학 밖에 양발을 걸치고 각자도생과 ‘먹고사니즘’만이 연구자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저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문학협동조합의 슬로건 중 하나가 “협동으로 돌파하자”입니다. 당시에는 ‘커먼즈(commons)’라는 개념을 몰랐지만 다소 비슷한 맥락을 ‘협동’과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협동조합은 법인격인데 이를 만들어서 인문학의 대중화와 시민인문학 사업을 하고 학문적 공동체를 만들어 대학 안의 부조리와 우리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나가자는 문제의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마침 인문학협동조합 창립 10주년 기념 파티가 있습니다.

진행자 협동으로 돌파하자라는 구호 아래 뭉친 협동조합 형식의 연구자 공동체가 인문학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이 인문학협동조합 창립 10주년 기념 파티가 열리는 날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문학협동조합의 운동은 현재진행중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집 영문명이 Scholars‘ Commons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집은 커먼즈를 강조하는데요 인문학협동조합과 연집이 비슷한 취지를 갖고 있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진행중인 운동을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10년의 시간 동안 축적된 활동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인문학협동조합의 지난 10년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그리고 인문학협동조합 운동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시는지 궁금합니다.

천정환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가 만들고 참여해온 여러 단체들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인 면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인문학협동조합은 연구자의집과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인문학협동조합은 학회와는 비교 불가능한 강한 협동 조합원으로서의 의식과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의 법적인 지위이나 협동조합원으로서 준수해야 하는 규약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협동 정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기여에 따른 배분 등은 여느 조직에서의 멤버십과 비교하기 어려운 높은 협동과 수평의 정신입니다. 어쩌면 이는 오늘날 연구자들에게 강요되는 삶의 실제적인 조건들과 맞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할 수 있을 정도지요. 또한 협동조합은 ‘열정 대학’, ‘길 위의 인문학’ 등의 여러 시민인문학 강좌 사업들을 해왔는데요, 협동조합 안에서 요구되는 실무의 무게가 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모색을 했습니다. 한계도 많이 느꼈습니다. 코로나19 때가 큰 시련의 시기였는데 그전에도 발전의 정체, 사업의 부진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작년과 작년 사이에는 이제 할 만큼 한 게 아닌가, 앞으로 더 나아갈 동력과 자신이 없지 않은가라는 ‘해산’의 의견도 강하게 대두됐습니다. 작년 이맘때 법적 해산을 놓고 투표를 하여 근소한 차이로 유지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이런 결정을 바탕으로 우리 인문학 운동을 새롭게 다시 하자는 몇몇 연구자들의 결기를 바탕으로 다시 버티기 시작하고, 새로운 멤버십과 ‘일’을 시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재기한 것입니다.

진행자 결국 운동은 누군가가 하는 것이고 그래서 운동 주체의 의지가 중요치 않은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해산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졌는데 해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근소한 차이로 유지하기로 결정되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협동조합을 유지하면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주체들이 가지는 의지는 무엇일까요.

천정환 구체적 형상과 개념으로 얘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지어 ‘해산’도 드는 에너지가 있는데, 해산보다도 이 작은 연대와 같이 하는 조직을 유지하고 만들려는 에너지는 백배 천배 더 소중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2010년에 앞서 말씀드린 신자유주의 대학체제에 대한 글을 쓸 때나 2013년 인문학협동조합이 출범했을 때와는 상황이 또 변했습니다. 대학의 상황이 많이 변하기도 했고요. 당시 30대였던 인문학협동조합의 주체들이 다 40대가 되었고, 석사과정 졸업 후 참여했던 박사과정생들이 박사가 되었거나 아직 박사학위를 받지 않은 40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협동조합 10년이 만든 새로운 주체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주체들은 무언가를 해볼 수 있다고, 학업과 인문학협동조합 사업을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듯이 해산 여부를 투표했을 때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출범 10주년을 맞이해서 꽤 많은 분들이 현장에 참석할 것 같고 축하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주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결의한 몇 사람의 헌신과 정성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소규모 조직은 이러한 서너 사람이 있거나 이 사람들을 받쳐주는 힘이 있으면 굴러갈 수 있지요. 이러한 사람들이 가지는 끈끈함이나 노력들이 현재의 상황과 맞물려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공연 학술운동의 특징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국어국문학계 학회들을 포함하여 문헌정보학계 학회들, 그리고 비판적 학술운동 단체라고 할 수 있을 연집 등이 참여하는 지공연은 물론 인문학협동조합과는 그 구성과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문학협동조합을 포함한 소규모 학술단체들의 활동과 구분되는 지공연 학술운동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천정환 협동조합은 알다시피 수익사업도 할 수 있는 법인격인데요, 인문학학동조합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도 예전의 힘을 잃고 부진했으며, 대학원생노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문학협동조합은 시민인문학 사업 이외에도 나름대로 학술운동의 성격을 가지는 활동도 했었습니다. 대학개혁과 대학원생 권익 문제에 대한 의식도 있었지만, 이를 길게 중심적인 활동으로 삼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촛불 이후에 대학원생노조가 만들어지고 민교협도 2.0을 선포했지요.

지공연은 학회가 매개하는 학술지식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학술제도 자체에 대한 아주 명확한, 미시적 차원의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저는 지공연이 이를 배경으로 삼아 운동을 시작한 것이 획기적이고도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같은 ‘학원자율화’나 거시적인 대학개혁과 막연히 교수ㆍ연구자들의 윤리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학문 생산·유통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공연을 시작하면서 마음 속으로 민교협과 대비하여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민교협은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교수 연구자 단체이지만 지공연과 같은 역할이나 문제의식은 가지지를 않았거나 가졌다 하더라도 이를 풀어낼 수 있는 단체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된 질문일 것 같은데요 지공연의 학술운동은 예컨대 1980년대 후반의 학술운동과는 다른 성격을 가질 것 같습니다. 과거의 학술운동과 구분되는, 지공연의 학술운동을 포함한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천정환 지공연의 학술운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새로 역할을 맡으신 박서현 선생님이나 고찬미 선생님 같은 분들이 새롭게 정의하고 재창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민교협이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혁혁한 민중연대 역할을 하던 시절을 봤고, 또 연구자로 성장한 이후 민교협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활력을 잃어갔는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단협에 소속돼 있던 1980년대 후반 만들어진 학술단체들이 제도 안으로 귀속되면서 사회적 의미를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민교협에서 6~7년 활동했는데요, 민교협은 1987년 설립 이후 거시적 수준에서의 민중연대 활동과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문제를 늘 제기하고 실천했습니다. 민교협은 한국 비판적ㆍ실천적 지식인 운동의 큰 상징입니다. 지금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직은 위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교협에는 언제나 민중ㆍ노동자 단체와의 연대에의 요청과 지식인ㆍ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요청받습니다. 늘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정작 민교협은 대학인과 자기 회원이 소속되어 있는 학교들에서의 민주주의의 파괴와 연구자의 타락 등은 막지 못했습니다. 민교협의 어떤 부분은 ‘87년 민주주의 체제’의 주체와 운명이 비슷합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노동ㆍ평화ㆍ인권ㆍ여성 등과 관련된 여러 운동들에 대한 인식과 연대를 요청받지만, 새로운 차원의 민주주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갱신과 기득권에의 탈주가 필요합니다.

이와 달리 지공연은 연구자 집단 스스로의 ‘학문 재생산’이라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한 미시적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이 매우 다릅니다. 또 지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민주화운동’ 세대 지식인 연구자의 주류로부터 시작하지 않았고 또 이제 21세기 한국 대학이 길러낸 가장 젊은 연구자 집단의 집행부와 지도부로 세대교체까지 이뤄낸 단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을 선언한 민교협도, 또 젊은 집행부가 있는 인문학협동조합과 대학원생 노동조합도 이런 점에서는 기대가 됩니다.

향후 학술운동의 과제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지공연에 참여하는 학회들이 발행하는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데요 이러한 점에서 향후 학회가 출판하는 학술지를 OA로 출판 전환하는 데 기여하는 지공연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학술지식의 자유로운 공유에 기여하는 이러한 활동은 물론 지공연 이외에도 학술지를 발행하는 학회들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학회는 향후 학술지식의 자유로운 공유가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한 학술생태계의 변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발행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 이외에도 학술생태계의 변화를 위해 학회가 어떤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오늘날의 대학의 파괴라든지 대학 민주주의와 같은 학술 생태계의 문제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오늘날의 학술 생태계의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시고 거기에서 학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천정환 큰 질문인데요. 새삼 학술생태계 문제를 굳이 정리할 필요는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껏 진단해온 것 말고 새로운 진단이 있는지가 더 궁금한데요, 지난 총회 토론 자리에서 말씀드렸듯이 선배 연구자ㆍ교수 선생님들이 지금까지 이끌어온 대학개혁, 학술운동은 성과도 있었으며, 남긴 유산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대학체제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속수무책 수수방관 했던 것만이 아니라 연구자ㆍ학술 단체들은 대학이 어떻게 변해야 되는가와 관련하여 사학법 개정, 공영형 사립대 등의 여러 담론을 만들고 투쟁도 해왔습니다.

제가 보기엔 지난 문재인 정부 초기 즉 지난 2017~19년이 이런 담론들을 실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아무 성과가 없이, 실행되지 못하게 된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한국사회 전체에서 문재인 정부 시기가 가지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개조와 사회의 민주적 재변혁,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등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시늉만하다가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촛불정부’를 자처했지만 위선과 게으름으로 결국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정권이 들어서게 한 책임이 큽니다. 그런데 또한 이는 단지 문재인 정부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체제의 묵은 것은 청산되지 못하고, 새로운 것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거시적인 시대의 징후 같습니다.

한국문학ㆍ한국문화 연구는 한국사회의 정체성과 긴히 연관된 지식과 담론 체계라 할 수 있는데요, 얼마 전에 있었던 서울국제도서전의 ‘오정희 사태’ 같은 일도 상징적입니다. 한국 문학장과 지식인 사회에서도 존경 받기도 불가능하고, 그러나 완전히 청산되지도 않은, ‘구체제’가 여전히 지배권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준 일 같습니다. 소위 ‘87년 체제’ 이후의 보수세력과 586세대가 같이 그 ’구체제’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함모, 주모 같은 과거의 운동권이었던 자들이 여전히 떠들어대며 인정투쟁을 벌이는 것도 구체제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찌꺼기처럼 여전히 있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윤석열 정권은 저런 퇴행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과도 정부 같은 게 아닐까요?

그에 비해 대학은 한국사회의 심화된 위기를 비교적 투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교육부는 상징적입니다. 이명박 정권 출신인 이 장관이 펴고 있는 글로컬대학 30 등의 정책은 현 한국대학체제의 몰락·재편의 속도를 아주 빠르게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몸 담은 인문학 분야뿐만이 아니라 전체 학문장이 어떻게 변할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수년 내로 한국에서의 근대 대학의 종말, 인문사회과학 학술재생산장의 제로베이스를 같은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바탕 하에서 대학 및 학술장 개혁을 위한 어떤 담론이 필요할 것인가가 지공연의 운동을 포함한 모든 학술운동의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계속 고민해야 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래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2000년대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자로 길러진 연구자들이 상당히 많아, 건강한 다음 세대와 건강한 분야와 문화도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 되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새로운 진단이라고까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제주대 소속 연구소에 있는데요 제가 교류하는 연구소 조교들분들은 제주대 사회학과 대학원생들입니다. 제주대에서 박사과정생으로서 공부를 하는데요, 교류를 하면서 이들이 그리는 연구자의 상은 대학 안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강사도 할 수 있고 교수도 될 수 있겠지만 대학생의 감소 등을 포함하여 대학 안에서만 안정적으로 활동하기는 힘든 상황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럼에도 공부에의 열의를 가지고서 연구를 하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저 열망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을 드리면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ㆍ연구자의 위계, 정규직 교수에 의한 대학원생의 착취 등을 포함한 대학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꽤 오래 전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연구자가 대학의 문제를 체감하고 있지 않을까하는데요, 하지만 이 문제를 함께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연구자들의 어떤 공동의 활동은,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생각보다 잘 접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학의 문제에 대응하는 연구자들의 공동의 활동이 다소 부재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혹시 이를 타개할 방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천정환 참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과 학술장의 문제에 대응하는 공동의 활동이 없지는 않지요. 비근한 예로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7개의 교수연구자 단체가 모여 전국교수연대회의가 만들어질 정도로 공동대응의 기운이 높아져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힘이 약하고 개별조직들은 사실 약체입니다. 대학원생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민교협, 전국교수노조 등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 단체들이지만 힘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연구자 특유의 개인주의와 각자도생 문화가 여전히 너무 강하고, 연구자 개개인이 물질적으로 많이 바쁘기도 합니다. 자기 시간의 5%든 10%든 내서 무언가 공공적인 일을 함께 해야 바꿀 수 있는데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대학체제가 20년 가까이 되면서 모순이 켜켜이 누적됐습니다. 원래 한국 대학이 가진 체질적 한계라고 할 수 있는 대학체제의 비공공성에, 학내 민주주의가 더 취약해진 근본적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지식공유연대 심포지엄에서 이송희ㆍ유현미 두 선생님이 발표한 ‘“한국에서 박사하기” 이후의 새판 짜기: 학계 거버넌스 구조 재편과 연구자 연대’에서 잘 정리하셨듯이, 횡적 네트워크를 결성할 때 필요한 인력의 문제, 노동강도의 문제, 쉽지 않은 세대교체의 문제 등도 있습니다.

진단을 한다면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보다는 희망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분을 비롯한 새 집행부가 잘 꾸려질 수 있었던 것이고요. 최근 연구자의 집에서 ‘마포신촌지역 네트워크 행사’를 통해 횡적 네트워킹을 시도했다는데요, 그처럼 중요한 것은 자생적 연구자 단체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또 더 많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단체들이 또 생겨날 텐데 기존 단체들과 주체들과 연결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각자 발버둥 치는 것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게 제 나름의 경험입니다.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과 횡적 연결 그리고 기존의 자원을 공유하고 활용하는 활동이 없으면 변화가 불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지공연도 모든 행사와 활동을 다른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서 해 나갔으면 합니다.

문화연구의 의미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문학 연구가 필요하며 이러한 새로운 연구, 글쓰기는 문화 연구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보시면서 문학연구, 문화연구를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아마도 현실의 삶과의 긴장을 놓지 않으려는 선생님 문제의식의 발로이지 않을까하는데요, 연구적 실천과 관련한 선생님의 문제의식을 소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의식이 선생님의 인문학협동조합, 민교협, 그리고 지공연의 활동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천정환 맞습니다.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20세기 후반 영국 좌파들에 의해 심화된 학문 연구 방법이자 비평에 기원을 둔 것입니다. 문화연구는 현실의 문화현상을 매개로 하여 관철되는 정치와 지배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관찰ㆍ분석하며, 문화현상에 들어있는 계급 재생산 문제에 천착합니다. 물론 문화연구에서도 비판적ㆍ실천적 연구와는 거리가 멀어진 제도화도 겪고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문화연구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문화에 민감한 연구이자 노동ㆍ삶ㆍ지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 민중문화ㆍ민중문학을 공부하거나 독서문화를 연구한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지성이 대중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가라는 문제, 지성이 노동하는 삶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가라는 문제에 나름 관심을 기울여왔는데요. 한편 그래서 저는 변화하는 학술장과 대학이라는 첨예한 지적ㆍ문화적 계급정치의 현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라는 문제에도 나름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 지난 10년 여의 활동을 규정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활동과 연구에서 올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데 이제 정리도 해보고 새롭게 무엇을 할지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진행자 말씀해주신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지공연의 향후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선생님의 향후 학문적 과제를 포함하여 학술적 실천의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천정환 지공연의 앞날은 밝은 것 같습니다. 성공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루었으니 새로 집행부를 맡으신 분들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활동을 마음껏 펴가고 이제껏 논의되어온 학회 연대나 공동 편집자 회의 등 우리 학문장에서 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눈치 보지 말고 추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분들이 고민하고 같이 의논해서 가는 길이 진리의 길입니다. (웃음) 과제를 물으시니 굳이 잔소리를 또 덧붙이자면 얼마전 큰 대회를 연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를 포함하여 여러 방면에서 인문사회 학술장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운동 방법론이나 세계관이 다를 수도 있지만 이런 분들과도 연대를 하는 것도 다른 진보적 연구자 단체들과의 연대만큼 중요할 것 같습니다. 민교협의 신입회원들과도 얼마 전에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새롭게 무엇을 하려는 분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이런 귀한 분들이 지공연ㆍ연집ㆍ민교협 같은 단위를 매개로 서로 자주 만나면서 공동의 행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말씀하신 활동들을 실천하는 것이 OA를 실천하는 것과 함께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주 밀도 있는 인터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를 잘 풀어서 여러 선생님들께서 읽어보시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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