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1 (김명환 집행위원)

활동소식

인터뷰일시 : 2022년 12월 27일(화) 오후 3:00 ~ 4:30

장소 : 줌 온라인

인터뷰이 : 김명환 (지식공유연대 집행위원,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인터뷰어 : 고찬미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지간행실 선임전문위원)

박서현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국내 부실 학술지의 문제와 그에 대한 대응의 과제

박서현 안녕하세요 김명환 선생님.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단체와 연구자 연대’(지공연)에서 발행하는 제5호 뉴스레터 게재를 위해 기획한 지공연 회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선생님께서 연구책임자로 수행하신 한국연구재단(재단) 정책과제 「학술지 평가 및 학술지 실태점검 개선 발전 방안 연구」에 대해 문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본 과제는 재단의 공모를 거쳐 지공연 회원들이 연구진으로 참여한 과제로서 연구진은 국내 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의 실태를 점검하고 그 개선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학술지 문제는 2021년 6월 23일자와 7월 1일자 『뉴스타파』의 보도 “논문공장의 영업비밀① 어느 학술단체의 ‘가짜 심사’와 ‘도둑 논문’”, “논문공장의 영업비밀② 표절, 조작, 부실 논문도 ‘패스’…KCI등재지의 민낯” 등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국내 부실 학술지의 실태 및 (아마도 학술지 평가와 관련되어 있을) 이러한 학술지가 존재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명환 『뉴스타파』에서 관광경영학 분야의 부실 학술지 운영 실태를 폭로하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보도 이후 재단이 국회에서 질책을 당하고 학술지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를 제3자에게 맡겨 진행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과제를 맡게 됐습니다. 애초에는 좀더 급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학술지 평가를 국가기관이 맡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중국하고 우리나라 정도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학문 선진국이 되려면 이러한 평가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도 하고 연구가 진행되면서 연구진 사이에서도 국내 학계가 여전히 여러 가지 면에서 취약하고 자율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재단이 평가제도를 도입해 학술지 수준을 일정부분 향상시킨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다소 중도적 입장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연구재단이 기여한 바를 충분히 인정하지만 한계에 부딪쳤다고, 관료주의적 한계라고 할 경직성을 개선해야 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시다시피 부실 학술지는 경쟁주의·실적주의 때문에 생깁니다. 대학에서 연구실적을 과도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논문 쪼개기라든가 중복 게재 등의 비윤리적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논문을 양산하는 것이며, 이러한 현실에 편승해 부실 학술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과정에서 재단의 실무자들과 대화하면서 부실 학술지들이 자신의 상업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재단의 평가기준을 영악하게 잘 충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매년 초 재단이 일부 변경된 학술지 평가기준을 발표하기 전부터 부실 학술지를 발행하는 기관에서 이번에는 어떻게 바뀌는지 정보를 알기 위해 계속해서 전화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가기준이 발표되는 즉시 거기에 맞춰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고요.

한국연구재단은 공공기관으로서 부실 의심 학술지가 정해진 기준에 일단 맞추는 한 걸러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재단에 부실 학술지의 실태를 제보받는 전화도 있어 제보가 실제로 들어오고 상당한 증거자료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지만, 재단이 이에 대해 빨리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이 공공기관 내지 관료조직의 한계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재단이 무조건 잘못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보가 들어오더라도 그것 하나만으로 부실 학술지를 퇴출시키기는 쉽지 않지요. 내부 제보자가 있고 심층취재를 통해 전반적 문제가 『뉴스타파』의 보도에서 드러나듯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조치를 취하더라도 소송으로 이어져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부실 학술지는 결국 학문사회의 공론화를 통해 퇴출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제가 지공연 2022년 하반기 심포지엄에서 얘기했듯 어떤 학술지에 5년 전에는 논문이 1년에 200편 게재되다가 현재는 1년에 1700편 게재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라고 학문사회가 추궁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으면 부실 의심 학술지로서 공론화시키고 각 대학에서 이런 학술지에는 논문 게재를 삼가라, 이런 학술지의 논문심사 의뢰를 받지 말라, 학술지 편집에 참여하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상업적 이익을 취하는 부실 학술지 발행 기관이 법적 대응을 해올 수도 있을 텐데, 제 생각에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부실 학술지의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 자체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국내 인문사회분야 오픈액세스(Open Access, OA) 운동을 주도해온 지공연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공연을 포함하여 학계에서 부실 학술지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명환 제가 재작년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는 몇몇 학술지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후 연구과제 선정 심사를 맡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심사를 하면서 젊은 연구자의 연구실적에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는 학술지 게재 논문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고민이 됐습니다. 이를 문제 삼아 이 연구자나 이 연구자가 속한 연구팀을 심사에서 탈락시켜야 할까 고민했던 것인데요, 처음에는 탈락시켜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부실 학술지에 논문을 실을 때 모르고 싣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아울러 급하다 보니 혹은 지도교수가 여기다 빨리 실으라고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부실 학술지에 논문을 하나 실었다는 이유로 너무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심되는 학술지를 학문사회가 점검해서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야 된다고 봅니다. 부실 의심 학술지에는 논문을 투고하지 않도록 참고할 블랙리스트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orea Insi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Information, KISTI)에서 운영하는 SAFE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세이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안심할 수 있는 학술지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물론 여기서 제공하는 리스트도 완벽하지 않고, 사실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치가 꼭 필요합니다.

또한 대학마다 연구처 같은 곳에서 학내 구성원들을 위한 셀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논문을 투고할 때 투고 후 비정상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게재 결정을 통보하는지, 또는 심사절차가 분명하게 있는지, 등을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셀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여기에 하나라도 문제가 있다면 투고하지 말게 해야 합니다. 셀프 체크리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투고할 경우, 이후 발생하는 문제는 해당 연구자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제시하는 셀프 체크리스트 같은 장치를 대학이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칼로 두부 자르듯 부실 학술지를 적발해서 하루아침에 퇴출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모르고 투고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고, 또 문제가 있는 지도교수와 얽혀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투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잘 고려하면서 체계적이고 엄정하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대응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서현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다만 국내 학계 현실에서는 다소 어려운 지점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셨듯이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는 학술지들은 분명 있는데 이 학술지들이 한국학술지인용색인(Korea Citation Index, KCI) 등재 학술지로 되어 있습니다. KCI 등재 학술지 기준을 충족시켰다는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와 의미가 충분히 공감됨에도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는 학술지를 공포하고 후속 조치를 취했을 때에는 굉장히 큰 반발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명환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학문사회의 자율성과 독자성, 그리고 학문적 양심에 따른 판단에 따라 우리가 이러한 작업을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KCI에 등재된 학술지라고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연구자가 양심적으로 셀프 체크리스트를 통해 확인해 보니 이 학술지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선다면 투고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요. 유관 학문 학자들이 봤을 때 이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들이 부실하다고 판단하여 블랙리스트에 올린다, 예컨대 한국지리학회나 한국경제학회가 모모 학술지는 우리 학회에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표명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당 학술지를 발행하는 기관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하는 것이 학문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싸워가면서 부실 학술지를 퇴출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내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반박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학술지 편집진이 우리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이 국내 최고 수준의 논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짜 논문은 아니다, 약간 부실한 논문들일 수는 있지만 KCI에 등재돼 있고 등재기준을 충족시켰다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부실하지만 KCI 등재 학술지라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여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로는 우선 논문 쪽수가 7-8쪽 밖에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공계의 경우에는 짧은 논문도 있을 수 있지만, 인문사회 분야나 융복합 분야의 논문이 10쪽도 안 된다는 것은 분량부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또 참고문헌을 보면 학술서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을 참고문헌에 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석사논문을 여러 개 인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게재하는 논문이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석사학위 소지자라 하더라도 논문에서 석사논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인용하지 않으며 사실 그렇게 많이 인용할 수도 없지요. 이와 같이 의심스러운 구체적 내용 문제들을 찾아내서 공론화하고 싸워나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서현 사실 이 문제는 많은 연구자들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특정 학문 분야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구체적 활동을 하게 되면 큰 파장을 몰고 올 것 같습니다.

김명환 보충 설명을 좀 하자면, 이런 부실 학술지가 있는지 모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본인들은 그런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고 그런 학술지에 투고할 생각도 없었으니까요.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는 학술지는 국내 학술지의 경우 복합학 혹은 융복합 분야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재단의 학술지 분류 기준이 8개(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공학·의약학·농수해양학·예술체육학·복합학)인데 이중 복합학 분야에 이러한 학술지가 집중되어 있다고 봅니다. 융복합이라 하면 영문학과 지리학이 만나거나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이 만나는 식이라야 융복합이라고 할텐데, 융복합 분야라는 학술지 대부분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논문은 영문학 논문, 어떤 논문은 지리학 논문, 어떤 논문은 사회학 논문인데 백화점 식으로 논문을 한 책에 모아놓고 이를 융복합 학술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술지에 1년에 논문 천 편 이상이 실리기 일쑤인데, 그렇다면 수많은 분야에 걸쳐 심사자들이 각 논문 당 3명씩 있어야지요. 과연 그랬을까요? 증거가 없어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학술지들은 객관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하나하나 문제를 찾아야겠지요. 물론 『뉴스타파』가 보도한 것처럼 내부 고발자가 대량의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제보를 한다면 아주 쉽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문사회가 수사권을 가진 것도 아니고 아니고 탐사보도 언론도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고찬미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의심 가는 학술지의 경우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KISTI에서도 세이프를 통해 리스트를 공유하는 것을 아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말해 관에서 리스트를 정하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러워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대학 연구처에서 한다면 엄청난 반발과 반론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나아가 연구처에서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저는 공식적 기관에서 하기 보다는 학문 공동체에서 얘기가 되고 공동체 안에서 셀프 체크가 돼야 될 것 같은데요 이상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여쭤보면 유명한 출판사이기는 한데 논란의 중심이라고 할 OA 학술출판사 MDPI(Multidisciplinary Digital Publishing Institute)는 전체가 다 약탈적 학술지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신속 출판(fast publication)이 가능한 부실 학술지도 많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높은 평가를 받는 SCI급 학술지도 있어서 손쉬운 판단이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명환 해외 학술지들, 특히 MDPI라든가 또는 프론티어스(Frontiers)의 학술지들이 있는데요, 말씀하셨듯이 이러한 출판사들의 학술지들도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누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22년 12월 15일 개최된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온라인 워크숍에서 이루어진 발표를 통해 MDPI 학술지에는 좋은 논문도 실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MDPI에는 SCI 최상위 학술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비즈니스 전략이라고 분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좋은 학술지를 좋은 조건으로 끌어들여 학술지나 출판사 평판을 올려놓고 다른 쪽에서는 부실 학술지로 장사하는 것이지요.

해외 유명 대학에서는 부실 학술지 제재를 매우 엄격하게 합니다. 예컨대 부실 학술지라고 해당 분야 연구자들이 판정할 경우 이런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교수가 학교를 떠나야 하는 등 엄한 조치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학문사회의 판단이 중요한 것인데요, 국내의 경우는 말씀드렸듯이 융복합 분야에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는 학술지들이 몰려 있어 우리는 사회과학도 인문학도 자연과학도 아니라고 하면서 검증을 피해다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실 학술지 문제에 대해 지공연에서도 논의를 했었습니다. 당시 융복합 분야라는 것을 아예 없애야 된다고 의견도 있었는데 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반론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대표적으로 여성학, 문헌정보학도 다 융복합 학문이고, 다른 분야로 분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융복합이 현대과학의 대세인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복합학 분류 기준은 유지하되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면 수준 높고 엄정한 학자들이 모여 예컨대 의심되는 학술지의 3년치 샘플링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학자들의 결론에 따라 한국연구재단도 즉각적인 퇴출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재단의 관료주의 속성, 달리 말해 법정 다툼에 휘말리는 것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단이 직접 나서서 하기는 어렵고 학문사회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학문사회의 판정위원회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비용을 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것은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요? 그런데 학문사회가 다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 가장 치명적 문제입니다.

연구부정행위의 규제와 건강한 학술생태계의 구축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부실 학술지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연구부정행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5년 소위 황우석 사건 이후 연구윤리 관련 지침 등이 정비·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장관 후보자를 포함한 공인의 논문 표절이나 중복 게재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는데요, 연구부정행위와 관련하여 선생님께서는 지공연 2022년 하반기 심포지엄에서 <연구부정행위 조사 및 처리의 원칙과 방향: 건강한 학술 생태계를 이룩하기 위하여>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부정행위를 규제하고 건강한 학술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고민을 청해 듣고 싶습니다.

김명환 심포지움에서 논문을 발표했는데 금방 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고, 공부도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만 강조하면 되는데, 소급입법금지입니다. 헌법에도 있지요. 소급입법금지를 연구부정이라는 엉뚱한 데에 잘못 적용하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장관 후보자라든가 공인의 논문 표절이나 연구부정 의혹이 나왔을 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당시에는 그게 하나의 관행이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모욕적인 말입니다. 수십 년 전에도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연구윤리를 잘 지키면서 양심적으로 연구해 온 수많은 학자들을 그야말로 망신 주는 것 아닙니까. 현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가 최근 영부인의 박사논문에 대해 그 정도의 표절은 다 있었다고 말했는데, 법대 교수를 십여년 한 자가 이렇게 말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2005년 황우석 사건 이후 각 대학들이 연구윤리 규정을 명문화했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변명의 하나가 명문화된 연구윤리 규정과 처벌 규정이 있기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역시 말이 안 됩니다. 누가 데이터를 조작했거나 표절한 논문을 1995년에 실었다고 해보지요. 그때는 황우석 사건 이전이기 때문에 명문화된 연구윤리 규정과 처벌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처벌할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조작한 논문, 표절 논문을 공식 철회되지 않는 한 어디선가 누군가는 지금도 읽고 있고 앞으로도 읽을 가능성이 있죠. 계속해서 피해가 발생합니다.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처벌하는 것은 소급입법금지와 모순되거나 충돌하지 않지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면, 징계 시효와 연구윤리 시효 문제를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형사범죄도 대부분 공소시효가 있고 연구부정 관련 징계도 3년인가 시효가 있습니다. 이는 죄를 지었다할지언정 일정 시기가 지나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윤리적으로 비난할망정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은 인간 삶의 안정성과 관련한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징계 시효를 그냥 두면 계속 피해가 발생하는 연구부정 논문의 철회와 같은 연구윤리의 시효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양자를 혼동하면 곤란합니다.

오픈액세스의 필요와 그 실현을 위한 대학도서관과 국가기관 등의 역할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아마도 건강한 학술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데요. 이제 오픈액세스(Open Access, OA)로 넘어가지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으로서 재직하시면서 선생님께서는 학내 구성원들에게 OA운동에 대한 지지 요청 등을 담은 서신을 발송하셨습니다. (현재 본 서신의 골자는 2021년 3월 28일자 『대학신문』 기사 “자꾸 오르는 전자 자료 값에 골머리 썩는 도서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서신에서 선생님께서는 전자 자료 사용 현황을 소개하시면서 도서관 예산의 인상 속도가 구독 비용 인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아울러 전자 자료 구독 비용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OA를 제안하셨습니다. 먼저, OA가 무엇이며 왜 OA가 필요한지 문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김명환 제가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으로 있을 때 위의 서신을 2021년 3월 28일자로 학내 전체 구성원에게 발송했습니다. 학내 구성원은 필요한 학술지를 도서관이 안 사준다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문의 세계는 넓고, 학술지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천 종씩 늘어난다는 얘기가 있는데 불만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알려드리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오르는 구독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OA밖에 없다고 했고요.

그런데 저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일은, 우리도 독일 대학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처럼 OA를 실현하기 위해 해외 거대 독점 출판사들을 보이콧해야 될지도 모른다라고 쓴 대목이 있었는데, 나중에 지공연 분들이 지적해 주신 것이지만 도서관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해외 거대 출판사의 보이콧을 입에 올린 것이 처음이었다는군요. 저는 당연히 제가 처음이 아닐 것으로 생각했는데 약간 놀랐습니다. 이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지공연에 더 관심을 가지고 같이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편지가 가져온 파장 덕분에 저로서는 굉장히 기분 좋은 감사 메일도 학내에서 받았고 또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편지를 학내외의 많은 분들, 그전에는 몰랐던 분들로부터도 받았습니다.

OA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대학과 대학도서관입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수십개정부출연연구기관이 작년에 엘스비어(Elsevier)하고 OA전환계약을 맺었습니다. 획기적인 것이지만 본인들도 인정하듯 연구기관의 계약은 그 규모가 작아 파급력이 크지 않습니다. 대학을 다 합친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과 대학도서관이 엘스비어나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나 와일리(Wiley)에 이러한 조건으로는 안 되겠다고 하며 OA전환 계약을 맺자고 요구하고, 전환 계약조건으로 당연히 기존에 내던 구독료와 게재료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낼 수는 없으며 비용은 같거나 더 낮아져야 한다고 협상을 하게 되면 협상이 결렬되고 보이콧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크지요. 그런데 보이콧을 위한 준비가 대학과 대학도서관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말만 하는 꼴이 되고 있는데요, 사실 지공연이 그동안 선구적으로 노력해왔지만 지공연은 학회들의 연대체이고 대학은 아니지 않습니까. 파급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2021년에 뒤늦게 깨닫고 노력하여 2022년 3월 도서관장 임기가 만료되기 이전인 2022년 2월에 대학OA추진위원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전문 사서분들과 회의를 했고, 거점국립대 도서관장님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카이스트 등 4개 대학도서관장님들, 또 사립대학 도서관장님들을 모아 몇 차례 회의를 하고 위원회를 출범시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잘 안 되는 이유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우리나라 국공립대학은 20%가 안 되고 사립대학은 80%가 넘는데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사이에 불신이 있습니다. 사립대학들은 국공립대학들이 정부 지원 하에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보고 국공립대학들은 사립대학들이 제대로 못한다고 보는 역사가 있지요. 그런 뿌리 깊은 불신까지 앞으로는 잘 고려하여 밀고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내년 2023년 6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OA2020 회의가 열립니다. 이번에는 대면으로 열립니다. 제가 중앙도서관장을 하던 시기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유럽을 방문해서 OA운동을 하는 OA2020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작년 9월 온라인으로 회의할 때 참여하여 처음으로 OA2020에 활동하는 분들을 접하긴 했습니다만, 이번 기회에는 반드시 직접 가볼 생각입니다. 대학도서관장들이 단결하고 대학들이 단결하여 OA를 위한 보이콧까지 가야 우리가 OA전환을 할 수 있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을 정도가 아니라 늦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고찬미 하나만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도 OA전환의 주체가 힘도 있고 규모도 커야 한다는 말씀에 절대적으로 공감을 하는데요, 대학도서관협의회가 있지 않나요. 협의회에서도 누리미디어 상대로 협상을 하기도 했었고요, 그 이후 움직임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명환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의 전자저널 협상과 관련하여 두 개의 협상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Korea Council for University Education, KCUE)를 통해 협상을 진행하는 컨소시엄입니다. KCUE컨소시엄이라고 하는데 전국의 국공립대학교·사립대학교·전문대학교까지 묶어 전체적으로 협상을 진행합니다.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한국에 들어와 있는 해외 학술지들의 에이전트들과 가급적 가격을 싸게 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합니다. 여기서 협상을 담당하는 대학 사서분들이 있는데 굉장히 열심히 하고 전문성도 높습니다.

또 하나의 협상단으로 대학라이선스사업협상단이 있습니다. 대학라이선스사업은 기획재정부가 교육부에 지원하여 핵심 저널을 구독할 수 있게 하거나 좀 싸게 살 수 있게 사업입니다. 예컨데 엘스비어의 스코푸스(SCOPUS)가 있습니다. 스코푸스는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인데, 원문까지 보는 것은 아니고 서지사항만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스코푸스를 못 보는 학교들이 있습니다. 2019년 제가 도서관장이 됐을 때 대학라이선스사업컨소시엄 위원으로 갔더니 그 당시 예산이 50억에 못 미쳤습니다. 예컨대 50억 예산이 있었다면 엘스비어에 30억 정도를 지불하는 대신에 스코푸스를 모든 대학에 대해 정가의 70%, 즉 서울대는 학생 수가 3만 명이니까 3만명의 구독 정가의 70%, 학생이 1천 명 정도 되는 전문대학의 경우라면 1천명 구독료의 70%를 지불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협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 있었는데 대학라이선스사업 예산에서 돈을 주니 저녁 5시부터 그다음 날 아침 9시까지는 OA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스코푸스도 2018년까지 몇 년간 그 조건을 수용하여 협상을 타결해왔는데, 2019년에 엘스비어 본사에서 이런 식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OA를 하는 계약은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면서 이 협상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엘스비어가 협상에서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저녁 5시부터 아침 9시까지 OA를 하는 조건을 철회하면 협상장에 들어오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대학라이선스사업 협상위원장을 맡고 있던 모 지방 국립대학의 도서관장님이 저녁 5시부터 아침 9시까지 OA하는 조건을 철회하면 자료구입비에 여유가 있는 국립대학 도서관이나 큰 사립대학 도서관들은 스코푸스를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지만, 작은 대학이나 대학 밖의 사람들에게는 혜택이 아예 없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엘스비어 요구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가는 조건이 없어지니 아예 협상을 안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위원장님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입장이었고 저도 여기에 동조했습니다. 전체 대학들이 모두 혜택을 보자는 것이 대학라이선스사업의 명분이라는 점에서 엘스비어의 조건을 받지 않았습니다. 엘스비어에 지불하려던 예산으로는 스코푸스에 비해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저널들을 더 사게 되었지요.

이것이 문제가 되니 그 다음해부터 대학라이선스사업 예산을 기재부가 늘렸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는데 예산이 점점 늘어 올해에는 220억인가를 줬습니다. 내년에는 더 늘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편집자 주-실제로는 2022년과 동일하게 동결됨). 어쨌든 대학라이선스사업이 일종의 OA 전 단계 같은 것인데요, 제 생각도 그렇고 은 그리고 KISTI의 OA 센터에 계신 연구원들의 생각은 220여억의 예산을 종자돈으로 해서 OA전환 계약 협상을 한다면, 사실상 어렵지 않게 OA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KCUE컨소시엄 그리고 대학라이선스사업컨소시엄이라는 두 개의 컨소시엄 협상단이 전자저널 협상을 진행하고 있고 그래서 전자저널의 가격을 계속해서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양쪽에서 사서들이 굉장히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으며 전문성도 높습니다. 이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고 이를 정부가 더 지원하여 OA전환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OA는 논문에 대한 자유로운 이용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연구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OA의 의의와 효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OA를 실현하는 데 어떤 추가적 제약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하여 연구재단 같은 국가기관이나 도서관, 대학 그리고 연구자를 포함한 학회 등이 각각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김명환 OA를 실행하는 데 가장 큰 제약은 이미 말씀드린 대학도서관과 대학이 제 역할을 안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정부와 국회, 연구재단 같은 국가기관, 그리고 대통령 직속 도서관 정부 정책위원회의 역할도 있습니다. 아울러 학회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도 있습니다.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OA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특히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에 일관된 도서관 정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셨던 신기남 위원장과 제 주선으로 작년 여름 『한겨레신문』 좌담을 했습니다. OA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었는데 신기남 위원장은 OA를 위해 노력하시고자 했고 안목도 있으신 분이었지만, 역시 돈줄을 쥔 기재부가 OA에 관심이 없다는 점 때문에 정체되고 있지요.

또 다른 문제로 도서관을 관장하는 중앙부처의 문제를 들 수 있는데요, 이러한 중앙부처 중에는 대학을 관장하는 교육부가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을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도 대학이 있으니 과기정통부도 도서관과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아울러 국회에는 국회도서관이 있습니다. 법원에는 법원도서관이 있지요. 지금 국가대표도서관 자리를 두고서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서로 긴장관계에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프랑스식 모델로 국립중앙도서관이 대표도서관이라고 하고, 국회도서관은 미국식 모델로 국회도서관이 대표도서관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어느 쪽도 손을 들어주기 어렵습니다. 결국 국가대표도서관 자리를 놓고도 확고한 정부정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육부 산하의 대학도서관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관심한 것입니다. 저는 정부에서 강력한 도서관 정책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 사실 지식정책·학술정책 같은 국가의 혁신적 비전을 보여주는 정책이 나와야 하고, 이를 위해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같은 기구가 제 구실을 해야 합니다.

작년 초에 통과된 소위 디지털 집현전법이 있습니다. 당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추진해서 통과시킨 법입니다. 디지털 집현전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인데요, 모든 온라인상의 자료들을 모아 AI를 활용한 효율적 검색을 가능하게 하여 국가발전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것인데, 상식적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집현전법에 따라 플랫폼을 만든다고 한들 학술논문 정보도 개방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디지털 집현전이 구현될 수 있을까요? 안 되지요. 결국 수박겉핥기식의 법이 통과됐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11월 유네스코에서 오픈사이언스(Open Science, OS) 권고안이 통과가 됐습니다. OA 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OS는 오픈소스와 오픈데이터, 오픈에듀케이셔널 리소스, 즉 교육자료들도 다 공개하는 거지요. OS의 대의를 내걸고 유네스코가 여러 차례 논의해온 것이었고, 그 권고안이 작년 말 통과됐습니다. 국제기구에서의 권고(recommendation)는 결의(resolution)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것입니다. 결의라는 것은 앞으로 논의해 보자는 것이지만, 권고는 이제 이것을 합시다라는 것이지요. 강제력이 있다고도 말할 높은 수준의 규범이 통과된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OA도 안 되어 있고요.

이광재 의원이 당시 외교통상위원장으로서 직책에 어울리는 결의안을 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OS 결의안에 대한 논의를 국회 차원에서 진행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지공연에 참여를 요청했고 저도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삐걱거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결국 만장일치의 결의안 초안이 나오지 않았고 실제로 결정된 결의안 초안은 제 눈에는 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아직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OS, OA와 관련해서도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학술언어로서 한국어의 중요성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결을 약간 달리하는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압니다. 국내 학계에서 한국어 학술지를 폐지하고 영어 학술지를 발간하여 국제적 수준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이와 달리 선생님께서는 학술언어로서 한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술언어로서 한국어의 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 위상을 더 높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명환 국회 OS 결의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가 가장 속상했던 것은 한국어가 학술언어로서 중요하다라는 조항이 결의안에 꼭 들어가야 된다고 했는데 아무 말 없이 그것이 빠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국회 OS 결의안에 찬성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학술언어로서 한국어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빠진 것이었는데, 저는 이것이 말이 안 된다고 봤습니다.

앞머리에 질문하신 재단의 연구과제 최종보고서에서도 말했고, 그리고 제가 지공연 심포지엄에서도 얘기했지만 의학 분야나 과학 분야에서조차 학술언어로서의 한국어의 중요성을 얘기합니다. 과학 분야에서는 석사생들을 위해 해외 연구의 역사와 동향을 리뷰 논문으로 정리하는 논문이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예컨대 전기공학에 입문한 석사생이 알아야 될 국제 연구 동향을 설명해주는 논문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논문을 원로나 중진 교수들이 한글로 쓸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영어로 쓰면 너무 어려워집니다. 또 이런 논문들이 기술개발을 하려는 중소기업의 엔지니어나 CEO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영어논문을 읽기는 어렵지만 기술적 안목이 있는 분들한테 도움을 줄 한국어 학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접할 수 있었던 거지요.

더 인상적인 것은 의학 분야의 최상위 저널 편집장께서 간호간병 분야와 법의학 분야는 한국어 학술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간호간병 분야는 나라마다 사회적 조건이 다르고 간호방식도 다르며 간병체계도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조건이 있습니다. 법의학과 관련해서도 사회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범죄의 양상이 나라마다 다릅니다. 국제적으로 이해를 시키겠다고 간호간병 분야나 법의학 분야 논문을 영어로 쓴다한들 아무도 안 읽는다는 것인데요, 우리말로 써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간호간병 분야나 법의학 분야에서 영어논문이 필요한 경우는 우리나라의 간호간병 상황이나 법의학 상황을 해외에 알려 서로 교류할 필요가 있을 때입니다. 이와 같이 학술언어로서의 한국어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된다는 얘기가 의학과 과학 분야에서도 나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전공한 영어영문학은 옛날부터 국제화되어 있는 데다 영문학이니까 영어로 써야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굉장히 강합니다. 한국영어영문학회지에는 지금 영어논문만이 게재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몇 년 전 우수 학술지 제도를 도입하면서 재단이 특정 분야 우수학술지에 1년에 1억씩 지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잠깐 동안이었지요. 그때 인문사회 분야 학회들이 다 반대하면서 우수학술지 제도를 거부하자고 약속했는데 영어영문학회가 배신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지원하여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뭡니까? 한국영어영문학회지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어학술지에 솔직히 말해 어떤 좋은 논문이 게재되는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고찬미 한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저도 고민했었습니다. 고민하며 방향을 못 잡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유용성을, 달리 말한다면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학술지식이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기 위한 한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국내에서 인문학을 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한국어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졌습니다. 특히 박사과정에서 BK 장학금을 지원받게 되면서 영어로 학위논문을 쓰는 것이 권장됐고 저도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니까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들 못지않게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위논문을 영어로 썼습니다, 한편에서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은 좋은 훈련의 과정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저는 국문으로 학위논문을 쓸 자신이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외국문학을 하거나 아니면 서양의 어떤 학문체계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소 복잡한 심경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영문학을 하는 사람과의 경쟁이나 국내에서 영문학을 한 사람의 유용성 등과 관련하여 우리의 위치가 중요할텐데요, 국내 대학원에서는 영어로 작업하는 것이 더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고 더 인정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 논문을 17세기 작품과 사료,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일단 이를 우리말로 옮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인용을 했을 때 번역할 자신이 없었고 이러한 번역에 드는 시간을 줄일 필요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론과 당시의 시대상과 이야기들, 담론들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을 사실 잘 배우지 못했고 공식화된 출판의 한 단계인 학위논문이 영원히 남을텐데 자신도 없었습니다. 영어도 그렇게 크게 자신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영문으로 작성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선생님과 이런 얘기를 좀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학문적 소통도 중요하니까 영문으로 쓸 수 있는 능력도 국내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훈련받아야 된다고는 생각하는데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국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용어를 포함하여 국문으로 번역하여 풀어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되지만 이 문제를 모두 다소 방기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이 문제를 피해간 사람으로서 이제 사실 국문으로 논문을 잘 못 쓰겠습니다. 영문을 아주 잘 쓰는 건 아니니까 결국 둘 다 어려움이 있는데 여전히 고민이 됩니다.

김명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두 가지 얘기를 하셨다고 생각하는데요, 한편으로는 국제교류를 해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영어로 쓸 수 있어야 하고 써야 합니다. 제가 아까 다소 일면적으로, 한쪽 측면만 얘기한 것일 수 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국제교류를 위해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하는 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어로 쓰다 보니 우리말로 학문적 소통이 더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17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영문학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요, 바로 원문을 영어로 인용하면 쉬운 면이 있죠. 그래서 어찌 보면 한글을 방기하는 측면이 생깁니다.

이 문제가 겉으로는 모순적인지만, 사실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합니다.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고 저의 은사이신 백낙청 선생님의 말씀인데, 영문학은 단일종목 경기가 아니라 이종경기라고, 영어도 잘하고 우리말도 잘해서 둘 다 뛰어나게 표현하고 둘 다 논문을 쓸 수 있어야 합격을 하는 것이지 어느 하나만 잘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를 하셨고, 저도 이를 학생들에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게 힘듭니다. 반면에 요새 젊은 학자들 중에는 한글로 논문을 못 쓰는 분들이 있지요. 특히 영문과에 많습니다. 심지어 한글로 논문을 쓸 생각도 안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요즘 SCI, A&HCI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면 KCI 등재 학술지에 실은 논문보다 500%를 더 인정받으니 얼마나 좋아요. 아예 안 하는 것이지요.

또 번역의 문제도 말씀하셨지만 외국의 문학작품이나 좋은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중요한 학술활동이고 국제교류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얘기가 복잡해지고 2종 경기 내지는 심지어 3종 경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이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술지 운영과 관련한 비정규직 교원 및 대학원생 노동의 문제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이외에도 학계와 학술지 발간 작업에는 비정규직 교원들에 대한 차별과 대학원생의 그림자 노동의 문제 등 많은 문제가 있는데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 및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명환 우리나라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고 대학에서의 비정규직 교원들의 처우, 대학원생의 그림자 노동의 문제 역시 정말 심각합니다. 대학이 붕괴되고 있다고 얘기를 하지요. 저도 최근에 많이 놀란 것이 작년에 80개 정도의 대학에서 모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대학 전체 교수 중 약 40%가 비정년트랙 교수였습니다. 전임교원으로 분류를 하지만 비정년트랙 교수이지요. 비정년트랙은 정년 보장을 받을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는 차별적 트랙이지요. 심지어는 무기계약도 아니에요. 계약 갱신을 계속해서 해야 되는 것이고 언제든지 잘릴 수 있습니다. 사립대학, 특히 비리사학으로서는 아주 편리한 제도이지요.

제가 재작년에 모 비리사학 임시 이사장을 했었는데 교수 명단을 보니 약 150명의 교수 중 40%에 약간 못 미치는 40명 정도의 교수가 비정년트랙 교수였습니다. 5-6년 근무했고 마흔이 넘었고 애들도 둘씩 있는데 연봉 3500-4000만원을 받습니다. 서울대학교 고참 조교보다 적게 받는 것이지요. 이는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무너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정년트랙 교수들은 교육부도 그 종류를 다 파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너무 다종다양하여 파악하지 못하는 것인데,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급여를 올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문사회는 특히 학술지를 운영할 때 이런 비정년트랙 교수 또는 강사 같은 비정규직 교원에게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일을 시킵니다. 또 대학원생들한테 제대로 보수도 안 주고 일을 시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사실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는 많이 개선됐습니다. 전문 편집인을 쓰고 이공계 학자들은 대학원생의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을 잘 모릅니다. 실제로 그런 것이 거의 없고요. 그림자 노동은 주로 인문사회 분야의 문제입니다.

학술지 지원사업도 재단의 연구과제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인문사회 분야는 한번 선정되면 1년에 1천만 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대체로 선정이 안 됩니다. 일회성이지요. 그런데 자연과학과 공학 쪽은 과총(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통해서 받습니다. 한 해에 4천만 원씩 대체로 4년간 지원을 받고 그 다음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드물더군요.  4천만 원 지원을 받으면 3천만으로 사람을 고용합니다. 공학 쪽은 돈이 많으니까 전문 편집인에게 편집도 시키고 JAMS보다 훨씬 나은 투고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문사회 분야가 이렇게 낙후돼 있다고, 제가 퇴임이 1년밖에 안 남았는데 이렇게 차별당하는 것도 모르면서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인문사회 분야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 다양한 비정규직 교원의 문제라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와 재단에 인문사회 학술지 지원 예산을 늘리라는 것입니다. 일단 100억이면 됩니다. 100억을 늘려서 인문사회 학술지 편집인 협의회도 만들고 이를 지원해서 학술지의 질도 높이면서 그야말로 피와 살을 갈아 넣는 착취노동을 없애야 되는 것이겠지요.

고등교육의 시장화를 저지하는 싸움의 필요

박서현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으로서 지식공유운동을 실천하셨을 뿐 아니라 지공연의 일원으로서 지식공유운동을 포함하여 국내 학술생태계를 변혁하기 위한 운동을 실천해오셨는데요, 선생님께서 이러한 학술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향후 학술운동의 과제가 무엇인지 아울러 영문학자로서 선생님의 향후 학문적 과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명환 중앙도서관장으로서 지식공유운동을 실천했다는 말은 명백한 과장인 것이 지식공유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정도지 실천했다고 하기는 좀 부끄럽습니다. 우리 학술생태계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 변혁까지는 아니더라도 개혁하기 위한 운동에 한 숟가락을 얹기는 했는데 아직까지는 별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이루어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새 교육부 장관이 하는 것을 보면 더 무너지게 생겼으니 걱정이 많습니다. 퇴임을 1년 앞두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불만족스럽고 우울한 1년을 보낼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에 있습니다.

향후 학술운동의 과제는 너무 많지요. 너무 많은데 참 불리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여당과 야당이 모두 고등교육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기재부는 고등교육에 적대적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어정쩡하게 타협이 이루어져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개편하여 초중고등학교에 가야 될 예산 1조 7천억 정도가 고등교육에 배정됐습니다. 그런데 그 쓰임새를 보면 대부분 국공립대학에 쓰게 돼 있습니다. 1조 7천억 쯤 된다고 치면 9천억에서 1조 가까이는 국공립 대학에 쓰게 돼 있습니다. 37개 국립대학이 쓰게 돼 있는데 그중에서도 거점 국립대학에 많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대학은 사업비 위탁을 위해 또 경쟁을 시킬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울의 몇몇 상위권 대학들은 알아서 잘 살아남고 서울의 중하위권 대학들은 어쨌든 인구가 많으니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점 국립대학이야 키워야하니 돈을 주고 나머지 대학들은 다 망해버리라는 것 같습니다. 정말 큰 문제죠.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대학의 서열체계는 굉장히 심하지만 여러 대학에 흩어져 있는 학자들 사이에는 뚜렷한 서열이 없습니다. 훌륭한 학자들이 작은 대학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문 활동에는 무슨 최고의 학자들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학자는 아니더라도 자기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다면 기재부는 싫어하겠지만, 저는 적정한 숫자라는 것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학문의 수준이 높을수록 학자들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여러 대학에 좋은 학자들이 많이 흩어져 있을 뿐더러 취직도 못한 재야 학자들, 시간강사들도 많아요. 그런데 지방 사립대학을 다 망하게 해서 이런 분들이 직장을 잃는다면 나라가 망하는 길입니다.

저는 금년은 고등교육의 시장화가 더 심해질 것이고 고등교육의 시장화를 저지하는 싸움도 커질 것으로 봅니다. 새 교육부 장관이 인기 학과를 많이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등의 발표를 했는데요, 이와 같은 식으로 20-30년간 계속돼온 고등교육의 시장화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OA운동도 각 대학도서관과 대학들이 단결할 때에만 가능할 수 있는 것처럼 저는 한국의 학문과 고등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도 연구자들의 단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의 다양한 요구가 있는데 이 요구들을 잘 정리해서 금년에는 여러 가지 큰일을 해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즉 연구자들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 그리고 연구자들의 사회적 힘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고등교육의 시장화를 저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쉽지 않죠. 연구자들이 노동운동 같은 운동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자신의 연구실과 강의실, 실험실을 오가며 열심히 연구하기만을 원하는 분들인데 집단행동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을 달리해서 새로운 일을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침 기억나는 일화가 8년 전인 2015년에 부산대학교 국문과 고현철 교수가 학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투신자살을 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8월에 사건이 터진 다음 9월 국회 앞에서 전국교수대회를 열었을 때 교수들이 지방에서부터 올라와 1천여 명 이상 모였습니다. 전무후무한 광경이었죠. 당시 국립대학교수연합회(국교련)와 사립대학교수연합회(사교련) 같은 단체들이 모두 발 벗고 나섰습니다. 교수노조도 작년에 합법화되었으니 더욱 교수단체들이 단결하여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학문적 과제로서 저는 죽기 전에 책을 세 권만 쓰고 싶은데요, 책 제목은 말 안하렵니다. 저는 제 마음에 흡족한 제대로 된 학술서를 아직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뭘 하느라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인생 수십 년 금방 가네요. (웃음)

박서현 부실 학술지의 문제에서부터 OA의 필요와 연구부정의 문제, 학술생태계의 개혁을 위한 운동의 필요 등 여러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찬미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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