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3 (이혜령 집행위원)

활동소식

 

인터뷰일시 : 2024년 6월 6일(목) 오후 8:00 ~ 9:30

장소 : 줌 온라인

인터뷰이 : 이혜령 (지식공유연대 집행위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진행 : 고찬미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문화부 선임전문위원)

박서현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배하은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양학부 조교수)

임세화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지식공유연대 활동

 

박서현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지공연)의 설립부터 현재까지 지공연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십니다. 먼저 선생님께서 지공연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지공연의 그간 활동 중 선생님께 특히 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혜령 지공연의 현 집행위원이신 박숙자 선생님과 천정환 선생님의 주도로 2019년에 국어국문학 분야 학회들의 회장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상용DB업체와 학회 사이의 계약이 주요 논점이었는데요, 당시 저는 한국여성문학학회 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학회지와 관련된 계약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작권료가 고스란히『여성문학연구』홈페이지 관리비로 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다른 업체와 새로 계약을 해야 되나라는 고민하던 차에 지공연의 예비 모임이라 할 수 있는 위 모임에 참여하게 됐고, 모임에서 저작권 관련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공연 활동 중 기억에 남은 것은 오픈 액세스(Open Access, OA) 전환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학회지에 실린 논문이 공공재, 커먼즈(commons)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공연 활동이 없었다면 학회지에 논문을 쓰는 것과 이렇게 쓴 논문이 출판을 포함한 논문의 생산, 유통 등의 여러 다른 부분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러 활동을 했지만 이것이 제게 남은 귀중한 교훈이지 않을까합니다.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그동안 지공연은 소속 학회인 대중서사학회, 상허학회, 한국여성문학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에 성공하는 등 여러 일을 해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학회장으로서 한국여성문학학회 발행 학술지 「여성문학연구」의 OA 출판 전환을 주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결정의 이유와 전환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혜령 제가 보기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지는 않았고 총회에서 쉽게 결정됐던 것 같습니다. (웃음) 제가 회장을 맡았을 때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였습니다. 학회 활동에 호응이 크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OA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의 상황에서 학회가 갖는 폐쇄성을 넘어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OA가 이러한 폐쇄성을 넘어선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회의 분위기가 고양되어있던 시점에서 OA를 결정했습니다.

어려웠던 것은 정말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의 노동이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출판 논문들을 새로 메타 데이터로 전환해야 되었는데 이 작업을 몇몇 이사들과 간사들과 일일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간을 들이면 되는 것이고 기술적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요, 오히려 아쉬운 것은 이러한 절차와 과정이 회원들 전부에게 공유될 수 없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OA의 강화나 진전까지 포함한 OA의 취지나 의미를 회원들과 함께 생각하고 공유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돌이켜보면 이를 함께 생각하고 공유하는 대신 회장이 OA를 결정하고 이러한 결정에 따르는 수고로움을 권위적으로 감당하게 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OA 출판 전환을 이룬 학회가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향후 다른 학술지들이 OA 전환을 위해서 참고하거나 유의해야 할 사항이 무엇일지도 궁금합니다.

 

이혜령 OA에 대한 더 깊고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OA 학회지를 발간한다는 것의 의미가 계속해서 환기되지 않는다면 회원 개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인문학 학회들이 독자적 플랫폼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연구재단이나 그 밖의 정부기구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업체 플랫폼에서 이 플랫폼으로 옮겨갈 때에만 조금 수고로웠을 뿐이지 이후 편집간사나 편집이사는 하던 일을 관습적으로 다시 하게 됩니다. 이 경우 OA 학술지를 발간한다는 의미가 회원 전체에게 충분히 환기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논문 출판 전 과정을 더 많은 회원들이 알고 또 이에 참여하는 방식이 없을까 고민이 됩니다. 그리고 상당한 정도의 저작권 수익을 얻는 학회에서 OA를 실천하거나 의사결정 구조가 다를 수 있는 연구소에서 OA를 실천하는 것은 요원해 보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지공연에서 OA를 실천한 학회들이 OA와 관련하여 어떤 영향력들을 행사하는지에 대해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회의 역할과 의미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지공연에는 이미 말씀드린 세 개 학회 이외에도 국어국문학계 학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학회들을 포함한 23개의 학회들이 모여 2024년 1월 25-26일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를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본 대회의 좌담회 학회란 무엇인가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본 좌담회 뿐 아니라, 지공연이 출판한 저서『지식을 공유하라: 한국 오픈 액세스 운동』에도 실린 좌담회 ‘OA라는 형식이 학회에 제기한 질문: 지식공유 대담(1)’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선생님께서는 학회의 건강한 구조 등 학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학회가 갖는 문제는 소위 학진체제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오늘날 학회가 갖는 문제가 무엇일지,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미친 학술진흥재단과 그 후신인 한국연구재단의 영향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혜령 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얘기하면 저는 상허학회와 민족문학사연구소로 출발했지만 나중에 학술지 등재제도 하에서 명칭을 바꾼 민족문학사연구소·학회에서 활동했습니다. 위 학회들에서 등재제도를 받아들일 것이냐를 결정하는 시기가 제가 박사학위를 받던 시점이었습니다. 임원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을 통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등재제도를 받아들인 핵심적 이유는 대학에 자리 잡은 기성 연구자들이 아닌 젊은 연구자들의 미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 같은 사람의 미래 때문에 받아들였던 것인데요, 박사논문을 쓰고서 논문을 어디에 실을 것이냐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 등재제도를 받아들여야 된다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받아들여야 학회의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였습니다. 미래의 연구자들의 재생산을 위해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이후 등재제도는 연구자의 평가기준이 되었으며 지금은 연구비 수주와 대학 내 교원 평가기준이 되었습니다. 배타적 기준이 된 것인데요, 이를 상대화할 수 있는 다른 기준들이 생겨나도 이 기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핵심적 기준이 되어 이제는 다른 기준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이 이 기준을 버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마찬가지로 중요한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 부차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많은 학회들이 학술지를 출판과 학술회의 개최를 위해 연례적으로 연구재단에 지원 신청을 합니다. 제가『민족문학사연구』편집위원장일 때도 신청을 처음에는 했고 여성문학회 회장일 때도 첫 해에는 관례대로 신청을 했는데 이후에는 안 했습니다. 몇몇 이사들과 간사들이 수고를 해야 하는데 떨어지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게 싫었고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수고를 들이느니 학회가 연례적·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사업들은 기본적으로 회원들의 회비를 잘 거둬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지원비를 인건비로 사용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사용할 수 없다면 아예 지원하지 말자고 결정했습니다.

학회는 학회지를 출판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데요, 등재제도는 이를 한층 더 강화하여 학회를 기능적·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 되게 만든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전혀 관심이 없고 논문을 학회지에 투고하고 게재하는 것만이 중요하게 되는 식으로 학회를 도구적이고 기능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서현 학회의 문제는 예컨대 연구 업적과 임용·승진·연구비 등을 엄격하게(?) 연동시키며 업적 평가를 통해 연구자의 연구 활동을 장려하는 학술장의 현실을 일정부분 반영하는 것이지 않을까하는데요, 학술장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학회가 학술장의 문제를 변화시키는 데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혜령 이제는 학회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을 생각하기가 좀 어려워진 것 같은데요. 사실 저는 많은 학회에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몇 개의 학회에서 활동했는데요, 이런 학회들에서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더 많은 장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언제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구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는데 사실 학교나 학회는 위계적 공간이지요. 교수들, 선배들, 그 다음 본교 출신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요즘에는 한국인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 등이 있는데요, 저는 학회가 좀더 다양한 연구자들이 위계를 덜 의식하면서 만날 수 있는 장일 때 연구자로서의 생애사에서 학회가 의미 있는 곳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이기도 한데요 저는 박사과정, 박사수료, 그리고 박사졸업 직후 몸 담았던 학회들에서 여러 대학의 선생님들, 연구자들과 함께 했던 공부 모임들이 학교 밖에서 연구자로서의 사회성과 네트워크를 만들게 된 터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러한 학회들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회가 제가 했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되고 있는지, 지금은 어떤지에 대해 잘 판단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임세화 선생님이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으신데요, 거의 비슷한 학회에 몸담고 있으시고 상허학회에서도 오래 일을 하셨는데요 얘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임세화 저는 학회가 위계가 없는 공간으로서의 이상적 상에 부합하는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편집이사, 편집간사 같이 학회에서 필요한 노동의 역할이 고착될 경우 어떤 의미에서는 학회가 대학보다 더 위계적인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평등한 학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대학의 위계를 강화하는 학회도, 예컨대 어느 대학의 학회라는 식으로 언급되는 학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연구자들의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생각했습니다.

 

이혜령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학술장을 변화시키기 위한 학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솔직히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웃음) 한국의 강고한 학벌 체계가 학회에서 덜 관철됐으면 좋겠는데 요즘 더 그러기 힘들어진 상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솔직히 말하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웃음) 인문학 대학원을 유지할 수 있는 학교 자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대학도 이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이런 점에서도 저는 솔직히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박서현 학회가 연구자의 생애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실 때 선생님께서 과거를 회상하신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혹시 선생님의 연구자로서의 생애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었던 학회에서의 경험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혜령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하기는 좀 그렇지만 (웃음) 저는 상허학회나 한국여성문학학회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상허학회 10주년 학술대회를 하는데 발표에 대한 예비적 구상에 대한 회의를 거쳐 발표자를 최종 결정했습니다. 저도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요, 이외에도 학회에서 이루어진 공부모임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교류하는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학교 이외에 곳에도 발을 디딛을 수 있는 그물망 같은 것이 펼쳐진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여성문학학회의 경우에는 임원진이 꾸려지면서 제게 연구이사 제안을 하셨습니다. 긴밀한 관계에 있지는 않았는데 일을 부여받으면서 연구자들과 예기치 않은 관계를 맺게 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킬 뿐 아니라 연구자들과 더 긴밀히 함께 하는 기회들이 주어졌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학회가 이렇게 기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요. (웃음) 학교, 학벌, 학연 같은 것들이 강하지 않을 때 학회가 더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회의 변화를 위한 고민의 필요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학회가 구성하는 학술행사, 학회가 출판하는 학술지 등 학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활동 모두가 연구자들의 협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 연구자들의 이러한 협력, 공동의 작업을 가로막는 예컨대 학회 내 위계 같은 것이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위계를 넘어 학회 내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혜령 위계가 있지요. 임세화 선생님도 말씀하셨고요. 그런데 저는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전화 걸고 메일 보내는 일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저는 이러한 역할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을수록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메일 보내고 전화 거는 일을 분산시키는 식으로 좀 거꾸로 선 조직 체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일을 좀 나눠서 하고 누군가에게 집중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학회들이 무슨 커다란 학회처럼 적절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점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이는 학술대회는 각 분야마다 있어왔습니다. 국어국문학계에도 이러한 학술대회가 있어왔을텐데요, 기존의 학술대회와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혜령 없었습니다. (웃음) 전혀 없었고요. 처음 시도됐고 무슨 역사학대회 같은 식의 학술대회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구상한 사람은 아니지만 저는 이것이 처음 시도되었다는 것이 굉장히 다른 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2회가 개최될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임세화 제2회 대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년 초에 개최될 것 같습니다.

 

이혜령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는 기존 학술대회와는 좀 다른 성격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각 학회와 연관 없이 온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학회들의 다소 닫혀 있는 성격 때문에 이런 학회들이 개최하는 학술대회에는 오지 않았는데,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는 와보게 되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사를 나누거나 친밀성을 검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세화 선생님 제 말이 맞나요? (웃음)

 

임세화 네 맞는 것 같습니다. (웃음)

 

이혜령 저는 개개의 학회들만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다양하고 광범위한 연구자 집단의 관심과 새로운 방식의 네트워킹에 대한 지향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었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학회들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개방적인 학회 운영이 어떻게 가능할까와 같은 고민이 필요할텐데요, 한 개의 학회가 고민할 때보다 여러 개의 학회가 느슨하게 연대하면서 그 해답이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에서도 말했지만 누가 왔는지 모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방명록과 이메일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새로운 조직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고찬미 학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학회의 폐쇄적이고 위계적이며 경직된 조직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요, 함께 공부하는 곳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지고 학술지를 찍어내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특히 요즘은 소속감만이 아니라 느슨한 연대도 거부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가 아직은 잘 정리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합니다. 저는 학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요, 발표를 들으면서 그 연구와 연구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함께 더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곳이 학회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고정된 공동체로서의 학회의 상은 계속해서 도전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혜령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동시에 저는 학회에서 만났던 사람들, 연구자들 사이의 관계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은 학계를 떠나면 다시 만나기 힘들지요. 공통의 연구 대상이 있기 때문에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세대가 바뀌더라도 저 관계가 있어야 학술지도 만들고 학회도 운영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관계가 맺어지고 유지되는 방식이 갈수록 기능적으로 되어가는 면이 있습니다. 그다음 특정 학교를 중심으로 혹은 위계 속에서 학회 일이 이루어질 때 학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 않을까합니다.

지공연에서 학회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게 되는 것도 학회가 기능적인 것으로 되어갈 경우 OA의 취지로부터도 멀어지게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일텐데요, 편집간사들이 하는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으면서 학술지에 논문을 계속 낼 수도 있을텐데, 저는 OA의 의미가 무엇이며 학술지를 출판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동료심사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다시금 환기되고 공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OA에 대해 조금 회의적인 것이 플랫폼들을 다 어디에 의존해야 되기 때문인데요, 플랫폼과 관련된 문제들일수록 학회가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지공연이 OA에 관한 활동들을 계속해서 펼쳐오고 있지만 과연 어떻게 계속될 수 있을지 좀 회의가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얘기를 듣고 싶어요.

 

박서현 지공연 공동회장단 회의에서 난상토론식으로 향후 지공연 활동을 어떻게 이어갈지를 논의하는 장을 금년 말쯤 갖자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지공연이 출범 이후 활발히 활동했던 것은 지식의 협력적 생산과 자유로운 공유를 강조하는 OA의 윤리적 측면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측면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과제로 남는 것 같습니다.

 

이혜령 OA가 확산되지 있는 것은 2년마다 회장이 바뀌는 학회의 체계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OA가 학회의 어떤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느냐는 점에 대해 좀 회의적입니다. 그것은 OA가 학회지를 만드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여성문학학회는 OA를 했고 제게 남은 건 있었지만 학회의 구성원들에게 남은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찬미 저는 OA가 저자가 자기가 쓴 논문의 저작권을 다시 갖게 되는 운동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은 OA가 저자의 권리와 의무를 다시 확립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공공재이지만 저자가 권한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을 연구자가 갖게 됐을 때 출판과 유통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을 인식해야 하고 연구자로서 자신의 논문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더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합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출판 과정 전체와 각 과정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보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OA가 지식의 대중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 본연의 권리와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연구자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가 OA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를 위해서도 OA에 있어 연구자의 권리와 의무가 같이 환기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합니다.

 

연구적 관심과 향후 과제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선생님의 연구적 관심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문학 및 여공 문학, 위안부 문학 등을 포함한 여성 문학,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여러 인물과 함께 문학에 미친 시대와 사회의 영향 등을 광범위하고도 구체적으로 연구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해오신 선생님의 문제의식을 소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혜령 거의 20여년을 걸쳐서 해온 제 연구영역과 주제들을 말씀해주셔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2011년에 제가 김항 선생님과 함께 엮어 출간한 책 󰡔인터뷰 :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은 저의 대학원 시절부터 박사학위를 받고 그럭저럭한 연구자가 되기까지 제가 목격한 지적 흐름을 인터뷰의 형식으로 정리해본 책이기도 합니다. 근대성, 식민지 근대성, 민족주의 비판, 문화연구, 페미니즘..그런 영향력 속에서 저도 있었습니다. 또 그 시대는 현재의 연구재단이 본격적으로 공동연구를 추진하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사사표기가 없는 제 논문을 찾는 게 더 힘들 것 같습니다만, 여러 선후배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머리를 맡대고 공부하고, 또 학술회의를 조직하는 게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저는 식민과 탈식민, 냉전을 겪어오면서 형성된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재현체계와 서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것 같습니다. 언어 내셔널리즘과 검열 연구도 그 제도적 조건과 관념에 관한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상징적 기능을 담당하거나 장르적 문법을 감당하는 집단이나 인물 군에 관심을 지녀왔던 것 같습니다. 식민지 시대 문학에서 사회주의자는 왜 성적인 일탈을 범한 존재로 그려지는가? 왜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는 점점 늘어가는가? 가령, 최근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왜 90년대 드라마나 소설에서 여성의 불륜이 여성의 자아실현으로 의미화되었던 반면, 최근 서사에서 전적으로 파멸되어야 할 상간녀로 그려지고 있는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한국사회의 변동과 감정구조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물음에 이끌려 연구를 간신히 해온 게 아닌가 합니다.

 

박서현 학술장의 변화를 위하여 지공연의 향후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혜령 저는 학회도 그렇고 지공연도 그렇고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공연은 멤버십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조직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물론 의미 있는 기획을 하고 활동들을 이어오긴 했지만 어느 조직이건 새로운 멤버십을 유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데 저는 이제 이 문제를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때가 온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배하은 지공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한국여성문학학회도 선생님께서 회장을 하시던 시절과 제가 요즘 체감하는 상황에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멤버십의 확장, 조직화이 선생님께서 회장을 하실 때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학회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이 거의 100명씩 왔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제는 한국여성문학학회도 점점 더 계속해서 하던 사람들이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조직화와 관련한 어떤 노하우 같은 게 있을까요?

 

이혜령 제가 한국여성문학학회 회장을 했을 당시는 페미니즘 리부트가 체감되던 때였습니다. 학술회의에 연구자가 아닌 분들도 왔었고 대학생도 왔습니다. 손을 들어 자기는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라고 하면서 질문을 했던 학생도 기억납니다. 저는 당시 한국여성문학학회 회칙을 보면 석사학위를 받아야 된다는 규정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을 하긴 했습니다. 한국여성문학학회가 페미니즘을 표방한 만큼 여기에 찬동한다면 학위와 무관하게 회원을 모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긴 했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는 많은 학생들이 여학생이고 경향적으로 여성문학이나 퀴어문학 연구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훨씬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지식 대중을 기반으로 한 페미니즘 지식생산이 가능한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 십여 년 사이에 팬덤을 지닌, 페미니즘, 퀴어 연구자들과 비평가들이 등장하여 대학 안팎의 사람들을 학회와 대학의 학술행사로 끌어들이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잘 활용한다면, 백래시 분위기 속에서 공개적인 학술장으로 학회가 대화를 보다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기능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OA는 일종의 피드백이 있어야지 더 의미가 있을텐데요, 그런데 피드백이 어려운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논문에 무슨 댓글을 다는 것도 아니고요. OA가 연구자들의 더 활발한 상호작용을 위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고민까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러한 고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OA에 기반한 보다 과감한 지식공유의 실천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학계 안팎의 관심 있는 독자, 청중의 광범위한 존재를 생각한다면, 앞으로 한국여성문학학회의 경우에는 이를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의 확장성과도 관련이 있고요.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향후 학문적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혜령 학문적 과제요, 지금 저는 큰 과제는 없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과제와 같은 것은 없는데요, 사실 제가 식민지 시대 문학 연구자입니다. 제 박사논문이 한국 근대 소설의 섹슈얼리티 연구였는데요, 20여 년 전에 쓴 것입니다. 저는 최근 한국사회의 가장 큰 지적 변동을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문화적 변동까지를 포함한 큰 지적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래쉬와 함께 분산적으로 되어가는 면이 있는데요,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저는 제가 했던 연구들을 재성찰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박사논문을 쓴다면 무엇을 어떻게 다시 써야 될까, 정치지형을 바꿔놓을 정도로 거대한 변동이 있었고 온 사회가 이를 겪었는데 백래시로 그것이 다 끝난 것처럼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서현 네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이혜령 저는 선생님들의 얘기를 더 많이 듣고 싶었는데요 솔직히 요즘 저는 학회에 잘 안 나갑니다. (웃음) 나이를 먹다 보면 좀 그렇게 되더라고요. 학회에서 맡은 일들도 거의 없고. 저는 학회와 관련한 일에 대해서 젊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 빨리 젊은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선생님들 얘기 좀 들으려 했는데요. 두서없는 얘기를 많이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박서현 아닙니다 선생님. 어느새 인터뷰가 시작한 지 1시간 반이 지났는데요, 여러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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