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지역마다 학술지 발행 방식과 문화에 차이가 있겠지만, 미국과 유럽 지역은 상업출판사와 구독 모델 판매 유통사를 중심으로 학술지를 발행해 왔습니다. 즉, 해외 저자가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을 상업출판사에 양도하고 이를 독점한 출판사는 구독 모델 데이터베이스에 논문을 판매하거나 유통하여 막대한 이익을 취해 왔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이윤추구에 충실한 해외 학술 출판 시장은 최근 대세가 된 오픈액세스 출판 방식으로 전환하면서도 본래의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도리어 상업성에 더 매몰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외 저명 오픈액세스 학술지에 저자가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고액의 논문출판비용(APC)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며 연구비 지원 없이는 개인 연구자가 논문 투고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양 상업출판사의 OA 출판 모델은 ‘지식의 민주화’라는 목적에서 오히려 멀어져 새로운 문제를 낳으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므로 재검토가 매우 시급합니다.
이에 더해, 이런 대형 상업출판사 중 몇 곳은 ‘약탈적 학술지’ 혹은 ‘부실학술지’ 논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저자에게 논문출판비용을 받는 구조를 악용하여 엄격한 동료심사 절차 없이 (혹은 부실한 심사를 통해) 게재료만 내더라도 논문을 즉시 출판해 주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약탈적 학술지’는 오픈액세스의 좋은 취지를 가릴 뿐 아니라 오명까지 씌우는 큰 위험을 안고 있어, 최근 학계의 주요 경계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이런 가운데 ‘약탈적 학술지’, ‘부실학술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스위스 출판사 MDPI가 2024년 3월에 한국지사를 오픈하며 한국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MDPI에서 출판되는 학술지 중 부실 논문이 대거 발견됐으며 이는 게재철회로 이어지고 Web of Science 등재에서 해당 학술지들이 탈락되는 결과로도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MDPI 최고경영자가 직접 한국에 방문해 간담회를 열면서 논란 대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명을 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펼치고 있지만, 게재료만 내면 심사없이 게재를 해주는 학술지는 ‘약탈적 학술지’일 뿐이며 이런 부실 논문 양산은 결국 학술 생태계 건정성 악화로 이어진다는 학계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과기정통부나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등 정부기관이 ‘약탈적 학술지’에 관련한 연구 윤리나 관련 매뉴얼을 확립해 나가고 관련 사안을 모니터링해 나가겠지만, 무엇보다 연구자 개별적으로 ‘약탈적 학술지’의 정의를 제대로 알고 그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에 대한 정보를 연구자끼리 교류하는 연구자 공동의 모니터링이 시행될 때 비로소 ‘약탈적 학술지’가 학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관련 기사 >
“학술 출판사 MDPI, 한국 지사 설립…지사장에 서운열” (조선비즈 2024.4.29.)
“약탈적 학술지 논란 스위스 MDPI ‘오픈액세스는 학술 출판의 대세…미흡했던 점 보완할 것” (조선비즈 2024.3.21.)
“부실의심 학술지 ’MDPI’, 승진 필요한 교수들이 논문 더 냈다” (연합뉴스 202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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