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4년 12월 2일(월) 오후 8:00 ~ 9:00
장소 : 줌 온라인
인터뷰이 : 김병준 (지식공유연대 공동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조교수)
진행 :
고찬미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문화부 선임전문위원)
박서현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임세화 (지식공유연대 미디어팀,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지식공유연대 활동
박서현 지식공유연대는 2019년 8월 29일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 선언>과 함께 창립했습니다. 창립 이후 지식공유연대는 학술지식의 오픈액세스(Open Access, OA)를 통하여 학술 생태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왔습니다. 2023년 총회에서 집행위원 체제를 개편하고 공동회장단을 선출한 이후, 선생님께서는 공동회장단의 일원으로서 지식공유연대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먼저 선생님께서 지식공유연대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지식공유연대의 그간 활동 중 선생님께 특히 더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사실 학술대회나 학술단체의 참여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지 않은가합니다. 대부분 스승이나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천정환 선생님께서 와보라고 하셔서 나오게 됐습니다. (웃음)
제가 관심 있던 분야가 있었습니다. 제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KCI 논문 데이터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이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를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습니다. 학술 생태계 혹은 지식 구조에 대한 연구를 데이터의 측면에서 진행하고 싶었는데, 마침 당시 지식공유연대가 발언을 하게 된 사회적 맥락이 있었습니다. 디비피아나 해피캠퍼스 등에서 연구자들의 학술적 결과물이 보상은커녕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업적 이용 자체나 상용DB모델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대학원생으로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논문 데이터를 활용하여 학위 논문을 쓰고 또 연구 주제로 삼고 싶어 참여하게 됐습니다. 지식공유연대의 전임 회장이셨던 천정환 선생님의 권유가 컸으며 이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2019년 시작한 이후 여러 기억에 남는 활동들이 있습니다. 창립총회,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한 심포지움, 그리고 정부나 학술단체, 다른 연구자들에게 파급을 미친 일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OA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데요, 연구자들 특히 학술단체에 있는 사람들이 OA에 대해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여러 학회들이 OA를 선언하고 학술지를 OA 학술지로 전환했을 때가 그리고 이를 실제로 이행하기 위한 정책적 전환의 흐름이 소기의 성과를 낳았을 때가 크게 기억에 남습니다.
OA
박서현 지식공유연대에서는 소속 학회인 대중서사학회, 상허학회, 한국여성문학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지식공유연대에 참여해온 문헌정보학 분야의 학회들은 이미 2018년에 발행하는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에 성공했고, 2022년에는 심리학 분야 학회들이 발행하는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공 사례가 있긴 하지만 국내 인문사회과학 분야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은 아직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한 과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선생님께서는 OA가 확산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아울러 OA가 왜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식을 생산·소비하는 학술 생태계에서 지식이 순환되지 않는다면 썩은 물이 고이는 식이 되기 때문에 저는 OA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I와 관련한 오픈 사이언스에도 저는 관심이 많습니다. 사이언스를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공개되지 않은 지식, 검증받지 않은 지식이 그간 우리 사회에 너무 많은 해악을 끼쳤습니다. 황우석 사태가 그러한데요, 논문으로 대표되는 학술 결과물을 누구나 접근하여 검증하는 식으로 결과물들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면, 연구자 스스로도 ‘내가 생산한 지식이 누군가에게는 기여를 한다’고 자신하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OA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식이 순환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인문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선생님들의 인터뷰를 봤는데요, 연구자들이 너무 파편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논문 쓰기에 너무 몰두하게 되고 이것이 학술지 시스템과 연결되면서 파편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옆방에 있는 특정 학과 교수님이 무엇을 연구하시는지 잘 모릅니다. 그나마 대학원생 때는 함께 세미나를 하는 식으로 교류가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이마저도 줄었습니다. 이 지식과 저 지식이 공유되면서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서로 무슨 공부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지요.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요즘에는 논문을 팟캐스트나 새로운 콘텐츠 형태로 바꿔주고 있습니다. 연구자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종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말할 수 있게 됐는데요, OA가 되지 않으면 지식이 고인물이 되면서 편향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OA 정신이 앞으로 학술 생태계에서 지식이 선순환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OA가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고 연구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지 않은가합니다. 그래서 OA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OA로 이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계속해서 납득시켜야 되는데요, 이는 저를 비롯한 지식공유연대 선생님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OA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연구자 문화가 많이 바뀌어야 될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측면의 변화가 필요한데요, 첫째는 연구자, 둘째는 제도입니다. 연구자 측면에서는 OA라는 모델이 예컨대 대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대학원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논문에 접근할 수 있고, 자신의 논문이 더 많이 읽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모델로 이해하면서 연구자 스스로 OA를 원하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OA 논문을 통해 더 많이 인용될수록 연구 역량을 인정받게 된다는 점에서 연구자들 스스로 OA를 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경우는 국비 지원이 굉장히 많습니다. 상업적 이용이나 금전적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분야의 경우에도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요, 국가의 지원을 받은 경우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OA 출판물의 형태로 연구 성과물이 공유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가연구데이터법(국가연구데이터 관리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라고 국회에 계류 중인 법이 있습니다. 논문을 넘어 연구에 활용한 데이터까지 국비 지원이 이루어진 경우 공유하고 공개하는 문화가 향후 정책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런 제도들이 더 확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부실 학술지 문제
박서현 지식공유연대는 부실 학술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서 이에 대응하고자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국내 부실 학술지의 실태 및 이러한 학술지가 존재하는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지공연을 포함하여 한국연구재단, 학회, 대학, 연구자 등 다양한 행위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학술 생태계에서 부실 학술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먼저 부실학술지의 실태와 이러한 학술지가 존재하는 원인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작년 여름 발표에서 다루었던 특정 학술지가 있습니다. 국내 인문사화과학 학술지들은 보통 1년에 많으면 4번 적게는 2번을 발행합니다. 연구재단에서도 최소 2회는 발행하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1회를 발행하는 학술지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당 학술지는 두 달에 한 번씩 발행되었습니다.
국내 인문사회과학 학술지는 상근 직원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극소수의 학술지를 제외하면 다들 영세하며 간사가 필요합니다. 시스템적으로 수천 편의 논문이 나올 수 없습니다. 물론 해외 이공계 분야의 경우 큰 자본이 운영하는 역량 있는 학술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인문사회과학 학술지들이 그런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천 편의 논문이 나오는 ‘괴물’ 같은 학술지가 국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몇 개씩 등장한 이유는 양적 평가 때문입니다. 연구자들을 논문 개수로 줄 세우는 게 임용에서 기본이 됩니다. 심지어 BK 같은 국책사업이 활성화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논문 쓰기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학술대회 발표라도 해야 합니다. 대학원생들이 논문 투고를 해보는 경험은 좋다고 보지만 장학금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양적 평가가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HK나 SSK 같이 참여 연구자 1인당 논문을 1년에 3~4편씩 써야 하는 사업들은, 연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연구자들이 서로 형해화되는 현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연구하는지 관심이 없으며 논문을 써내면 임용에 도움이 되는 등의 인센티브가 있으니까 논문 쓰는 데만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연구자 개인의 이익과 제도의 방향이 맞물리면서 시장이 생긴 것이고요, 연구자 개인이나 연구 집단 모두 ‘논문을 빨리 써서 빨리 심사받고 돈을 좀 내더라도 빨리 성과가 나오는 학술지에 내자’고 하여 논물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습니다. 연구재단도 이 문제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학술 생태계에서 부실 학술지 문제에 대응하는 것 역시 연구자와 제도 측면 모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연구자 스스로 자정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부실 의심 학술지가 등재 취소를 당하는 것을 보면서 연구자 스스로도 ‘이런 곳에 논문을 내는 게 내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국립대학 위주로 임용 지원 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예컨대 대표 논문을 5편 이상 못 올리게 하는 등 실적 리스트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정량적 평가를 좀 줄이고 정성적 평가를 늘리는 식인데요, 저는 이런 변화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제도들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고, 학술장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연구자 개인 및 연구재단이나 교육부, 대학들이 심사 평가 시스템을 개선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정량적 평가 시스템이 먼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임세화 지금 말씀해주신 대학의 임용 심사 시스템의 문제와 더불어 학술지 평가와 심사 같은 학회 차원의 제도적 문제에 대한 개선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일단 연구자의 임용만이 아니라 각종 지원도 모두 논문 수를 맞춰야 되는 상황입니다. 학술지 내부 평가 시스템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고 들었는데요, 연구재단에서 평가 기준으로 삼는 탈락률 등을 이유로 학술지에서 투고를 많이 받아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량적 평가 시스템
박서현 과거에도 임용이 되려면 당연히 논문을 썼어야 했을 것이고 평가 시스템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 현재와 같은 정량적 평가 시스템이 정착되었고 이러한 평가 시스템이 지식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한 게 아닌가합니다. 평가 시스템에 변화가 일어난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김병준 아무래도 대학 평가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예컨대 KCI 논문을 많이 쓰는 연구자보다도 이른바 SCI 논문, 영어 논문을 쓰는 연구자들이 있어야 대학 랭킹이 올라가고, 또 연구자들은 이러한 논문 게재로 인센티브를 받으며, 논문을 많이 쓰는 연구자들에게 각종 과제와 연구비를 몰아주는 식의 일이 지속되다 보면 결국 이런 연구자들에게 인센티브가 가니까 연구를 많이 하는 연구자가 좋은 연구자라는 도식이 만들어지는 것이고요.
저는 지금 등재지 시스템 자체가 유지가능한가라는 회의가 듭니다. 등재지 탈락이 거의 없는데 등재지는 계속 추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등재지에 게재되는 논문의 양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관련 데이터를 계속 보여드리고 있는데요, 논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학술지들은 난리입니다. 좋은 원고가 없다고요. 학술지는 계속해서 원고를 받아야 되는데 투고할 데가 많으니 투고일을 연장, 재연장하게 됩니다. 학술지 입장에서는 좋은 원고가 없다고 하는데요, 연구자들은 논문을 써도써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쓰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끝도 없이 쳇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는데요. 이 문제에 대해 저도 더 연구를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고찬미 국내외 대학평가에 대학들이 왜 목숨을 거는지 저도 요새 궁금했는데요, 대학평가 결과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이나 정부로부터의 인센티브가 없더라도, 대학의 입시 홍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고 들었습니다.
KCI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
박서현 말씀을 들으면서 대학의 문제가 학술 생태계 전체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학과 디지털 인문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지공연에서 활동하시면서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시고 연구교수로 있으시다가 이번 학기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재직하시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공유연대에서의 활동이 선생님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지식공유연대의 활동이 크게 두 측면에서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박사논문 주제를 정할 때 직접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이 주제가 연구할만한 사회적 가치가 있고, 연구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향후 장기적 연구가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을 줬습니다. KCI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가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겠다는 자신감말입니다. 지금 이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별로 없습니다. 문헌정보학에서 논문 서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하지만 이는 데이터 자체에 대한 연구이지 이로부터 파생된 연구, 예컨대 인문사회과학 학술장을 둘러싼 문제와 그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는 지식공유연대 활동을 하면서 제 주제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연구가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요즘에는 이런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대학원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른바 전통적인 인문학을 하는 연구자들은 대부분 인문학을 배워서 무엇하냐는 물음에 재미있으니까 하지라고 대답하지만 자신의 연구를 의미화하는 작업이 혼자서는 참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학문일수록 더 하지 않은가 합니다. 지식공유연대 활동을 통해 제 연구를 의미화하는 일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박서현 선생님은 KCI 논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식 구조, 역사의 변동을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계신데요. 이 작업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를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병준 제가 하는 작업들은 사회학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학술장에서 어떤 주제가 뜨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유행이나 흐름을 점검하면서 지식의 변화상을 보는 지성사적 측면도 갖고 있습니다. 지식장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살펴보는 외부적 관점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 연구자의 수나 논문이 남성 연구자보다 많아지는 시점들, 젠더에 따라서 연구 성과물의 비중이 달라지는 측면들이 있습니다. 연구자의 생년에 따라 학술 활동이 달라지는 방식 같은 논점들도 있습니다. 사회적 변화와 학술장을 연동하여 지식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문학 연구의 변화
박서현 KCI 논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식 구조를 연구하는 것은 현재 급변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을 반영하는 연구이지 않을까하는데요, 선생님은 한국학과 디지털 인문학을 함께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오늘날 급변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 다른 인문학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친숙하지 않으실까합니다. 이러한 친숙함은 연구에서의 장점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하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예의 환경의 영향 하에서 향후 인문학 연구가 어떻게 변화될 것이라고 예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컨대 인문학에서의 공동연구 경향이나 향후 인문학 연구에 미칠 AI의 영향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저는 인문학과 공학의 딱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보통 인문학이 디지털 환경과 관련이 있을까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인터뷰에 참여하신 선생님들도 이미 디지털 인문학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느 연구자가 논문을 도서관에서 볼까요. (웃음) 디지털로 글도 읽고 쓰고 하는데요, 한국사 연구자 중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종이책을 펴서 확인하는 연구자가 있을까요. 원전을 보는 방식이 아예 달라졌습니다. 데이터 사이언스나 통계를 활용하는 정량적 인문학도 디지털 인문학이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연구를 한다면 이 자체를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 연구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뉴스 라이브러리를 활용하지 않으면 연구가 어렵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데이터 환경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간에 이는 현실입니다. 인문학 연구자가 디지털 자료를 다루는 일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또 이에 친숙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각자가 다루는 데이터를 누구나 볼 수 있는 형태, 오픈 엑세스로 인터넷 환경에 공유하고, ‘나는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이터 기반의 연구가 인문학에서도 점점 확장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인문학도 앞으로 자연과학처럼 자신의 연구 데이터를 책으로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전자 문헌의 형태로 언급하지 않을까합니다. 저는 이것이 디지털 세대의 등장과도 맞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못 돌아갈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옛날 선생님들은 저널에 논문을 보내려면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하지요. 책을 받아보려면 미국에 있는 도서관에 신청해서 몇 주 걸려서 받아보고요. 이제 그렇게 되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지요. 챗GPT도 나왔는데요, 이런 기술들이 점점 더 연구를 위한 도구처럼 사용되면서도 인문학 연구의 본령은 계속해서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도구를 우리의 사유와 조화롭게 잘 쓰느냐가 과제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동 연구 경향도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문학 데이터의 영역이 점점 더 대형화되면서 한두 사람이 데이터를 만들거나 입력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연구자들이 같이 추가 태깅을 한다거나 데이터 정제를 하는 작업이 인문학 연구에서도 점점 더 일반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I의 영향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요즘 학문후속세대인 대학원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요, 그간 대학원생들이 많이 했던 입력 작업이라든가 태깅 작업, 정제 작업이 AI로 점점 더 대체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예 맡기는 게 아니라 검수는 사람이 해야지요. 그래서 인력의 부족함에 따른 어려움도 AI로 해결하면서 아마도 작업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인문학 연구가 점점 더 데이터 기반의 연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학회의 변화
박서현 디지털 환경의 급변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되는 사실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변화는 연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학회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께서는 한국디지털인문학협의회에서 활동하시면서 협의회에서 발행하는 『디지털인문학』을 만드는 데 직접 관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는 국어국문학계의 23개의 학회들이 모여 2024년 1월 25-26일 개최한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의 좌담회 ‘학회란 무엇인가’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학회가 오늘날 어떠한 역할을 해야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컨대 발행하는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에서의 학회의 역할 이외에도 말씀드린 급변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 학회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어떠한 역할을 해야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어려운 질문인데요, 왜냐하면 제가 아직 경력이 짧고 학회장이라든가 학회에서 큰 역할을 맡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전환에서의 학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학회는 지식의 적극적 공유와 유통, 생산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회에서 학술대회를 하고 학술지도 내지만, 학술대회나 학술지는 이전부터 있었던 다소 오래된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를 OA 출판 전환과 함께 더 적극적으로 디지털 환경에 걸맞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콘텐츠도 만들고 유투브 영상도 만드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학회의 몫이기도 하지만 연구자의 몫이기도 하고, 연구자와 학회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문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좋을 일이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잘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정말 좋은 성과를 많이 내고 있는데 일반 대중은 알지 못합니다. 여러 연구 성과물 덕분에 K콘텐츠도 나오고 사극도 나오는 것인데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더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논문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이를 넘어 여러 콘텐츠로 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글 NotebookLM을 활용하면 논문이 팟캐스트로 바뀌기도 하고 유투브 영상 등으로도 자동으로 바뀝니다. 원 소스를 가지고 멀티 유즈를 하는 역할을 학술단체나 연구자 개인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품격 데이터를 활용한 고품질의 연구 성과를 잘 알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서현 말씀하셨듯이 학회만이 아니라 개별 연구자 역시 오늘날 급변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데요, 이러한 환경에서 인문학 연구자에게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어떤 태도나 역량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일단 인문학 연구자라기보다 광의의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경우 디지털 역량이 있다면 자신의 연구를 디지털 환경에서 더 잘 알려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지도학생들에게도 쓰는 논문이 정말 가치 있으려면 더 유통돼야 하고 더 얘기돼야 하니까 개인 홈페이지를 꼭 만들라고 말합니다. 구글 스칼라도 좋고요. 학술대회에서도 얘기를 합니다, 개인 유투브 계정도 만들라고 하는데요, 자신의 논문을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성과를 잘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이제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점점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합니다.
고찬미 인문학적 지식의 소통과 전달 방식이 변화될 필요가 있는 요즘의 환경에서 인문학 학회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인문학 학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김병준 사실 저도 초보 연구자라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지만 조금 얘기를 해보면 요즘 대학원생들의 세미나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요즘에는 필로버스 등에 인문학 대학원생들이 인문학을 배우러 찾아옵니다. 지도교수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 공부가 외주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칸트니 하이데거니 헤겔이니 이런 철학을 공부해야 되는데 공부가 외주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미나 같은 게 없어지면서요.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원생 수가 줄다 보니 규모의 경제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학회들이 역할을 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대학원 교육이 안 되고 있으니 학술단체에서 연구자들이 이런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알리는 등의 역할이 좀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학술지를 만들고 학술대회를 여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런 역할을 해야 학술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을까합니다. 요즘에는 대학원에서 원하는 수업도 개설이 안 되고 선택지가 별로 없다 보니 공부를 하려고 과외 수업까지 듣는 경우까지 생기는 것인데요, 저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공연의 향후 과제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지식공유연대가 창립한지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요, 특히 2023년 총회를 통한 집행위원 체제의 개편 이후 지공연은 매년 2차례의 심포지엄과 1차례의 총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속 학회들이 발행하는 학술지의 OA 출판 전환이 예의 세 학술지의 전환 이후에는 추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참여하는 학회 역시 확장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지공연의 향후 활동 양상을 어떻게 그리시는지, 나아가 지공연의 향후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지식공유연대에서 계속 해야 하는 활동 중 하나는 OA를 알리고 OA가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실질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꾸준히 해나가는 것입니다. OA 출판 전환이 낳는 효과를 알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매뉴얼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안내하는 일을 계속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 활동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려면 OA 학술지로 더 많은 학술지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은 조금 멈춰 있는 상태라서 이것이 아마도 지공연의 가장 큰 향후 과제가 아닐까합니다.
더 많은 학술지들이 처음부터 OA 학술지로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기존에 있는 학술지를 OA 학술지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새로운 학술지를 만들 때 OA 학술지로 만드는 것은 좀더 간단하고 쉬운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웹에 최적화된 학술지들도 있는데요, 향후에는 이러한 학술지들을 만드는 데 저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좀더 디지털에 최적화된 학술지를 만드는 것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향후 학문적 과제
박서현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향후 학문적 과제나 학술적 실천의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병준 아마 장기간의 프로젝트가 될 것 같은데요. 연구자로서 제 정년이 29년 정도 남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 ‘디지털 지성사’라고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지식의 역사를 디지털로 바라보는 것인데요, 저는 이를 길게 보고 예를 들어 근현대시기 동아시아의 지성사까지 확장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지식인이 일본과 중국의 지식인으로부터 분명히 영향을 받았을 텐데요, 이런 영향 관계 역시 연구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연구했던 것은 KCI 사이트에 논문이 축적되기 시작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대략 20년 이내의 작업들이었는데 기간을 더 늘려보고도 싶습니다. 예를 들면 1980~90년대의 지적 작업들과 성과물을 데이터로 만들어 학술장을 분석하는 작업도 해보고 싶습니다. 기간을 더 늘려 일제강점기까지, 그리고 지역으로는 동아시아까지 확장해서 한자문화권 내에서의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것인데요, 이러한 정신사적 연구도 하고 싶습니다. 실제 이러한 연구가 역사학 분과에 있습니다. 물론 저는 디지털로 접근하고 싶습니다. 논문이나 단행본 그리고 현재 나오는 데이터들까지 같이 묶어 다루는 게 제 향후 목표입니다. 그런데 좀 거대합니다. (웃음)
박서현 거대한 목표 꼭 이루셔야죠. (웃음) 긴 호흡을 갖는 작업들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되며, 현재 국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부족한 부분이 이런 작업들이지 않을까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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